진정한 천국을 찾아가는 영웅의 고독한 길
십자군 전쟁 배경..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킹덤 오브 헤븐'

▲성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십자군의 기사로 나서, 살라딘의 진영으로 돌진하는 발리안
아무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기도 한 예루살렘을 둘러싼 피의 전쟁과 사랑.

'글래디에이터'의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은 11세기에서 13세기말까지 이어진 중세 '십자군 전쟁'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두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대 서사극 '킹덤 오브 헤븐'은 서사극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글래디 에이터'의 감독과 대작 '반지의 제왕'의 올랜도 블룸(반지의 제왕 레골라스 역)이 만났다는 이유로도 지난 4일 개봉됨과 동시에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며 흥행 도로를 달리고 있는 작품이다.

스콧 감독은 유럽의 중세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자 하나의 카메라로 담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십자군 전쟁'을 한 영웅의 일대기를 통해 함축된 의미로 담아놓았다.

십자군 전쟁이 발발된 지 백년 후 1184년경 기독교의 지혜로운 왕 볼드윈 4세는 이슬람의 술탄 살라딘과의 평화협정을 통해 기독교와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종교에 상관없이 개방한다.

하지만 볼드윈 4세 아래 교회 기사도인 기 드 루지앵은 볼드윈 4세의 동생 시빌라와 정략결혼을 한 이로, '신의 뜻'을 부르짖으며 이슬람인들을 살해하여 술탄 살라딘으로 하여금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향하게 한다.

살라딘의 공격으로부터 예루살렘 성을 지키려는 기사 고프리는 천민인 대장장이로 살고 있는 자신의 아들 발리안(올랜도 블룸)을 찾아내 자신의 영토 이블린과 예루살렘을 지키라며 기사도를 하사한다.

▲아들을 찾아나선 고프리(오른쪽)와 천민에서 기사로 바뀐 발리안(왼쪽)의 여정

'약자를 보호하고, 생명을 걸고 진실만을 말하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살아가는' 기사도를 발리안은 잘 받아들여, 예루살렘의 볼드윈 4세로부터 높은 신임을 받게 되며 동시에 기 드 루지앵의 암살 대상 1호로 떠오른다.

볼드윈 4세의 죽음 이후 기 드 루지앵의 왕위계승은 다시 피비린내 나는 기독교와 이슬람과의 전쟁을 야기시켰으며 결국 '신의 뜻(?)'을 받들며 전쟁을 일으킨 루지앵 군인은 전멸하게 되고, 발리안은 예루살렘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끝까지 성을 지킨다.

이에 수십만의 대군과 맞닥뜨리는 발리안은 백성을 지키기 위해 성을 지키는데...

먼저 '킹덤 오브 헤븐'으로 인해 논란을 빚어온 이슬람의 '살라딘을 악역으로 묘사했다'는 주장은 무색하게 한다.

영화는 술탄 살라딘에 문제제기를 하기보다, 편협한 신앙관으로 자신만의 '신'을 만들고 자신의 생각을 '신의 뜻'으로 둔갑시켜 '피의 전쟁'을 일으킨 신앙인들에게 강력한 경고의 메세지를 보내고 있다.

2시간에 걸친 영화를 이끄는 발리안은 한편, 그 시대 사제들과 투철한 신앙관을 가졌다고 하는 기사들로 볼 때는 '불경건한 자'이며 '신성을 모독한 자'로 비추어지는 것으로만 봐도 스콧 감독의 의도는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영화의 화려한 영상과 잔인하리만큼 사실화된 전투 장면들 위로 지나가는 것은 '절실한 신앙관을 가진 기사도'와 '신이 버린 기사도'와의 대조이다.

'절실한 신앙관을 가진 기사도'와 사제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동지를 쉽게 암살하고 이슬람인들을 무차별 학살하며 전쟁이 '신의 뜻'임을 믿고 전쟁을 일으키고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피'만을 생각하는 인물들.

반면에 '신이 버린 기사'로 나오는 발리안과 티베리아스는 '신앙'이라는 핑계로 재물과 명예를 탐하는 거짓 신앙인들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고, 신분의 차별을 없애며, 명예를 다하고 생명을 다하여 진실만을 말하려는 인물들이다.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키려는 살라딘의 이슬람군에 맞서 싸우는 발리안의 예루살렘 백성들

그리고 카메라는 감독이 의도한 대로 예루살렘을 '킹덤 오브 헤븐'으로 비추지 않고, 모든 종교인들이 하나되어 평화를 지켜나가는 발리안의 작은 성 이블린을 '킹덤 오브 헤븐'으로 묘사하고 있다.

카메라의 줌은 영화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갈수록 그 초점을 진정한 '킹덤 오브 헤븐'에 맞춰나가는데, 발리안의 말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명예를 지키고 생명을 다해 진실만을 말하며 약자를 보호하고 평화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힘쓰는' 기사도의 정신과 마음에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예루살렘을 끝까지 지키며 백성들의 전멸을 막고자 노력했던 발리안과 이를 정복시키고자 했던 살라딘의 마지막 협상 장면에서의 짧은 대화는 이러한 메세지를 가장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평화적으로 협상을 체결한 뒤 "예루살렘은 무엇인가"라는 발리안의 질문에 술탄 살라딘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대답을 한다.

전쟁을 위해 피흘리고 죽어가야만 했으며 죽이고 죽여야만 했던 그 비참한 전쟁에 깊은 허무를 느끼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 뒤 다시 돌아서며 살라딘은 "모든 것이기도 하다"는 말을 했지만, 이 또한 이슬람의 술탄 살라딘의 마음에 담긴 '평화를 향한 갈망'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주인공 발리안은 폭력의 광기를 신앙으로 합리화하기 위해 '킹덤 오브 헤븐'을 지키지 않고, 진정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 '킹덤 오브 헤븐'을 버리는 영웅으로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영웅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