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예성,교단통합 본격 '시동'

▲양교단의 연합사업이 보다 활성화 되고 있다. 사진은 2002년 성결인대회에서 포응하는 양교단 총회장
5일 로드맵 제시-교파연합 관심고조

한국교회 최초로 양교단 교류사업으로 공동교재 개발을 완료한 기독교대한성결교회(총회장 이용규)와 예수교대한성결교회(총회장 김재송)이 합동연구위원회 모임을 통해 구체적인 양교단의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6인 소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그동안 보여왔던 활발한 연합사업에 이어 교단간 통합에도 본격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양측은 신년초 양교단 연합체인 한국성결교회연합회 신년하례회를 갖고 올 한해에도 양교단간의 연합 흐름을 이어가기로 결의했다.

합동연구위원회는 양측 대표 각각 10인으로 구성된 위원회로 그동안 기성-예성 공동 성결인대회, 통합공과발행 등의 다양한 연합활동을 기획해 왔으며 앞으로 양교단의 통합에 대한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연구를 맡을 6인위원회가 구성, 이르면 오는 4월과 6월 열리는 예성과 기성 정기총회에서 교단통합에 대한 안건도 상정될 것으로 관계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교단연합 논의 어디까지 왔나

기성과 예성과의 교류는 2000년 6월 양교단 교류협력위원회가 결성을 통해 시작됐으며 지난해 4월 정식 교류기구인 '한국성결교회연합회'를 통해 본격적인 교류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이후 양교단은 한성련을 중심으로 교류를 조금씩 증진해 오고 있다.

한성련은 발족 당시 "양측의 소극적인 자세로 용두사미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으나 한성련은 그러한 우려를 깨고 지금까지 교류사업의 주체로 그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

이처럼 양교단이 활발한 교류를 펼칠 가능성을 보여줌에 따라 '여름성경학교 교재 공동출판', '강단교류' 등 공동행사에 대한 관심도 함께 고조된 바 있으며 '2002 성결인 세계선교대회' 등 실질적인 연합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도 했다.

성경학교 교재 공동출판은 양측이 신학적으로 한 뿌리임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실질적인 교류가 이루어 질 수 있는 주요한 행사라는 평가 또한 받고 있다.

또 강단교류는 이미 양 교단 총회장이 매년 실시하고 있을 정도로 보편화 됐다. 그동안 교계에서 금기시 되어 왔던 강단교류를 이토록 쉽게 추진할 수 있는 것은 양교단간의 벽이 거의 허물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처럼 이들 두 기관의 활발한 교류 움직임은 교단간의 연합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교단간의 대립대신 화해와 평화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매우 큰 귀감이 되고 있는 것. 두교단의 교류가 더욱 증대될 경우 그 여파는 타교단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여 이들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양교단 통합로드맵 발표

올해 초 열린 한성련 신년하례회에서 합동연구위원회는 6인 소위원회에 교단통합을 공식화하기 위한 문서작성을 위임하는 한편, 교단통합을 위한 실질적인 절차연구도 함께 요청하고 있다. 또 이같은 요청에 대해 6인 위원회는 오는 5일까지 교단통합 과정을 담은 로드맵을 제시하기로 자체적으로 결의하는 등 발빠른 연합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날 설교를 맡은 예성 김재송 총회장은 "기성과 예성은 지난 40년간 갈등을 겪어 왔으나 여전히 동일한 신학적 모토에 근거하고 있다"며 연합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이에 기성 이용규 총회장은 "교단내에 연합 분위기가 이미 조성돼 있어 화해와 협력으로 통합을 추진해 나간다면 좋을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양교단이 공식면담을 통해 교단간 연합을 본격 추진하기로 결의함에 따라 현재 한국교회내 일고 있는 연합운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40년간 분열된 기성과 예성의 연합은 동일한 뿌리를 가진 교단간의 통합이라는 점에서 교파간 연합운동에 대한 관심도 고조될 전망이다.

기성과 예성은 지난해 양교단 교육국 관계자들이 공동으로 참여, 여름성경학교 교재를 개발한 바 있으며 올해 상반기에 사용될 통합공과도 개발한 상황이다.

교재개발 연구는 2002년 12월부터 본격적인 연구작업이 진행됐으며 교재 이외에도 여름행사 프로그램, 찬양과 율동 창작 부분도 공동으로 연구가 진행되는 등 상당한 진보를 보인바 있다.

한편, 한국성결교회연합회는 2001년 구성돼 그동안 교회학교 공동 공과 출판과 공동 학술대회,공동 세계선교대회 등을 개최하며 연합사업을 벌여왔다.

한국인으로 시작된 자생적 교단

한국성결교회는 그 기원에 있어서 자생적 교단이라는 매우 중요한 특징을 갖고 있다. 한국 개신교의 성결교회가 외국 선교사가 오기전 한국인으로 시작된 전도관에서 비롯 되었다는 사실은 한국 개신교 선교사상 상당히 가치있는 일로 평가받고 있다.

때문에 이번 양교단의 통합 움직임도 초기 교파선교에 따른 한국교회의 분열을 극복하는 의미있는 사업으로 관계자들은 바라보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 성결교회가 존재할 수 있게 된 최초의 선교활동은 한국인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동경성서학원에서 3년간 수학한 정빈, 김상준이 1907년 귀국하여 선교사들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셋집을 얻어 '(동양선교회)복음 전도관'이라는 간판을 붙이고 한국선교를 시작하였다.

정빈, 김상준의 선교활동에 동양선교회의 후원이 있었으나 그들이 동경성서학원에 가게 된 것은 동양선교회에 의하여 선택 되었거나 초빙 되어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자의적인 구도적 길이었고 수학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직접 전도의 방법으로 그 당시의 선교에 크게 공헌하여 1910년까지는 진남포와 개성에도 복음전도관을 세웠다. 당시 동양선교회는 인적, 재정적 부족으로 인하여 아직 한국에 발을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1910년 동양선교회 파송 감독인 토마스목사가 오기까지의 3년간에 걸친 정빈, 김상준 두 사람에 의하여 수행되었던 초기 복음전도관 사업은 선교사가 오기 전에 한국인의 손으로 닦아진 한국성결교회 수립의 바탕이 되는 것이기에 이는 한국 개신교사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선교사적으로 귀중한 국면으로 남아지고 있다.

초기 한국기독교 큰 비중 차지

한국에 개신교선교가 시작되던 이조말엽은 한민족의 운명이 기울어가던 시기였다. 청일전쟁과 1904년 노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1905년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고, 1907년에 군대를 해산하였고, 1910년에는 한일합방을 하게 된다.

이러한 한국의 사회정치적 특수상황 속에서 성결교회의 선교활동이 시작되었고, 성장, 발전하여 온것이다. 이와같이 정치적인 변천에 따라 대중은 서양문물제도의 우수성을 알게되어 서양인의 종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태세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이때의 한국민들은 울분과 일본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차 있었고, 무엇인가 힘이 될만한 것이면 붙잡으려고 하던 때였다. 이상의 여건들은 한국성결교회의 창시자인 김상준, 정빈 두사람이 복음전도관을 열고 전도활동을 시작하는데 좋은 바탕이 되었다.

한국교회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1907년에 일어난 대부흥운동이다.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건 장로교회와 감리교회에서 부흥운동이 일어나 온 나라를 휩쓸고 있었다. 이 부흥의 때에 한국성결교회가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4중 복음을 들고 부흥의 불길 속에 뛰어 들게되었다. 즉, 1907년에 일어난 한국교회의 부흥의 불길은 한국성결교회의 시작에 큰 힘이 되었고, 성장에 큰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연합운동 참여로 교단비중 늘려야

새시대를 맞는 성결교회의 방향성은 연합운동에 적극 가담, 비중있는 교단으로 인정받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성결교회는 웨슬리의 후예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감리교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성결교회는 감리교회의 복음적인 그룹과 깊은 연대를 맺어왔다. 또한 성결운동은 오순절운동의 모체이기도 하다. 현대 오순절운동은 성결운동에서 나왔다. 50년대 성결교회와 하나님의 성회는 다같이 NAE의 멤버였다. 성결교회가 오순절운동과 유대관계를 강화할 때 초시대의 성령운동의 열기를 회복할 수 있다.

아울러서 기성은 한국의 성결교파들의 연합활동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주장도 제기된다. 한국에는 기성, 예성, 나사렛교회, 하나님의 교회, 웨슬리안교회 등 여러 성결교파들이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매년 성결교파들의 연례모임이 있어서 성결의 복음을 전하는데 같은 노력을 쏟고 있다. 이에 연합성결집회를 공동으로 개최하는 것과 공동신학 심포지움을 개최하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성과의 연합이 가장 절실히 다가오고 있다. 예성은 60년대까만 해도 기성과 같은 교단이었고, 분열된 이후에도 두 차례의 합동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신학자들은 예성과의 연합을 위해서는 첫째, 같은 뿌리를 강조하는 역사연구를 해야한다. 둘째, 어느 정도 제도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셋째, 신학대학의 교류를 정책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등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후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를 공동으로 개최하는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김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