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얼짱이란 말이 유행병처럼 돌고 있습니다. 이 말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조금씩 사용되던 은어였는데, 작년에 어느 네티즌이 인터넷에 얼짱 까페를 만들면서 대유행이 되었고 이젠 방송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는 말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이 얼짱 카페를 통해 연예계에 진출하는 사람도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얼짱선수, 얼짱정치인, 얼짱베이비, 얼짱아줌마 등 각계 각층의 얼짱을 찾아 내세우는 등 얼짱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몸이 예쁘고 잘 빠진 사람을 지칭하는 몸짱, 심지어는 여성 강도 용의자인 강짱까지 생겨났습니다.

얼짱은 아직 국어사전에도 등록되지 않을 정도로 따끈따끈(?)한 신조어(新造語)입니다. 이 말은 '얼굴이 잘 생겼다, 이쁘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짱이란 말은 학교에서 싸움을 제일 잘하는 친구에게 붙여주던 말이었는데, 거기에 '얼'자가 붙어 얼굴이 정말 예쁜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 된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 가운데도 얼짱이 있을까요? 창세기 39장 6절에 보면 요셉에 대해 말하기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얼굴이 잘생기고 몸이 잘 빠졌다는 얘기입니다. 당연히 얼짱, 몸짱입니다. 모세 얼짱입니다.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달을 숨겼더니”(창 2:2).

사무엘상 9장 2절에 보면, 사울에 대해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기스가 아들이 있으니 그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하더라.” 잘생기고 키도 큰 얼짱의 기준에 부합된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삭의 아내가 된 리브가도 얼짱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창 24:16). 또한 에스더는 페르시아 제국의 아하수에로 왕의 눈에 들어 왕후의 자리까지 앉게 될 정도로 출중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에스더 2:7)

그렇다면 성경의 인물 중 진정한 얼짱은 누구일까요? 성경은 다윗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삼상 16:12), “소년 중 한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다윗)을 본즉 (수금을) 탈 줄을 알고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삼상 16:18) 다윗은 얼굴은 물론이고 용맹하며 입담도 있는 다재다능(多才多能)한 진정한 얼짱중의 얼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운 사울을 버리고, 대신 다윗을 새로운 왕으로 세웠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사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아무리 용모가 뛰어나고 키가 크며, 몸매가 잘 빠졌다 할지라도 그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자리하고 있지 않다면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얼짱임에 틀림없습니다.

얼짱이란 말은 우리 한국 사회의 그릇된 외모 신드롬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얼짱, 몸짱이 되어야 취직이 일순위로 됩니다.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얼짱들을 영웅시 합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얼짱은 존경과 경의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이러한 얼짱을 만들기 위해 성형수술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외적인 용모는 영적인 부분이 해결되지 않고는 허상(虛想)에 지나지 않습니다. 외적인 것이 아닌 내적, 영적 아름다움을 소유하게 될 때 그 모습은 진정한 미(美)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채계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