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땅이문제다 내 땅이 문제다

피터 와그너 박사는 LA 훌러 신학대학에서 가장 유명한 교수였다. 학기초에는 그의 클래스에 수강 신청하기 위한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전 세계에서 그의 강의를 들으려고 몰려왔다. 탄탄한 이론과 자신의 체험이 더해져서 학생들에게 실제적인 가르침을 주었다. 그 인기를 아는 대학교에서는 그에게 총장 자리를 제안했다. 대학 총장! 교수에게 일생 한번 올까말까한 꿈의 자리가 아닌가? 당신이라면 그 제안을 어떻게 받겠는가? 와그너 박사는 총장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왜? 자기 땅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총장은 가르치는 자리가 아니라 행정 하는 자리다. 그러나 와그너 박사는 자신이 행정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능력은 가르치는 것! 교수로써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이다. 와그너 박사는 자신의 빈약한 행정 능력 때문에 총장 한번 못해보는 것에 대하여 추호도 원망해본 적이 없다. 그 대신 자신의 영역을 더 깊게 하기 위하여 전 세계를 발로 뛰어다니며 자료를 얻고, 연구하고, 가르치며, 책을 썼다. 그는 자기 땅에 충실했다.

군중들이 예수님 주위에 모였을 때 알쏭달쏭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씨뿌리는 자가 씨를 뿌렸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돌밭에 떨어진 씨는 뿌리가 얕아서 곧 말라버렸다.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잘 자라다가 가시가 기운을 막아 결실을 보지 못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 군중들은 모두 흩어졌다.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시시한 설교? 나랑 상관없는 말?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면 시시한 설교가 아니다. 어떤 농부가 귀한 종자 씨를 아무데나 마구 뿌리겠는가?

여기 중요한 교훈이 들어 있다. 열매 맺는 건 땅의 문제라는 것! 파종자의 문제도 아니고, 씨의 문제도 아니다. 땅은 내 마음을 말한다. 땅은 내 영역을 말한다. 여기는 내 관할이다. 아무도 내 허가 없이는 들어올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열매 맺는 인생을 사느냐, 황폐한 인생을 사느냐는 내 마음 밭의 상태에 달려있다. 내 인생은 남이 문제가 아니다. 부모 문제가 아니다. 조상 탓할 것도 없고, 배우자 탓할 것도 없다. 내가 문제다. 내 생각이 문제다. 내 마음 밭이 문제다. 내 인생은 내 책임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남 탓만 하는 사람은 바보다. 볼은 나에게 넘어왔다. 씨는 나에게 뿌려졌다. 그 씨는 농부가 아껴서 간직해 두었던 최상급의 종자씨앗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자기 밭을 갈기 시작하면 열매는 저절로 맺히기 시작한다.

지현곤씨는 초등학교 일 학년 때 척주결핵에 걸렸다. 자신의 힘으로는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가난에 찌든 삶의 척박한 환경에서 그는 학교도 몇 달 다니지 못하고 2평 남짓한 방에 갇혀 살았다. 40년 동안 그 방에 엎어져서 그렇게 살았다. 그의 유일한 희망은 동생들이 빌려온 만화를 보는 것. 그 만화를 통해서 한글을 익혔다. 다 읽은 만화를 보고 또 보다가 그 만화를 흉내내서 그리기 시작했다. 그 작업에 점점 몰두하면서 지현곤씨 앞에는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자기 자신의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점차 그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전시회를 열었다. 우연히 그 작품을 본 사람이 맨하탄에서도 전시할 것을 제안했다. 나는 그의 전시회에 걸린 만화 중에서 '노아의 방주'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어떻게 40년 간 세상구경도 못한 사람에게 저렇게 깊이 있고 완성도 높은 그림이 나올 수 있을까.' 그의 녹음된 육성이 CD를 통해 전시장에 흘러 나왔다. '예전의 꿈은 남들처럼 뛰어다니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지 않았다. 지금 주어진 땅, 그것이 남들 보기에는 매우 작은 박토일지라도 최선을 다해 갈았다. 그러자 점차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

당신의 마음 속에는 어떤 땅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