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냐고 묻지 않겠어요

오랫동안 신문에 칼럼이 실리면서 전화로 상담해 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생면부지의 인사가 자신의 깊은 고민을 털어놓는다. 이름을 밝히지도 않는다. 그냥 자신의 고민을 들어달라는 것. LA사는 미세스 박의 얘기를 듣게된 것도 이런 경우다. 전 가족이 미국 온 지 6년. 남편은 오자마자 조그만 사업체를 시작했고 잘 적응하며 살았다. 2년 뒤에 조그만 집도 마련했으니 두 내외는 꽤 부지런히 일했다. 집을 산지 얼마 안되어 남편은 교통사고를 만나 그 자리에서 숨졌다. 그 뒤로 4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마음이 갈피를 못 잡는다는 것이다. 두 자녀도 깊은 우울증에 시달리며 점점 멍청해지는데 자신은 더 미칠 것 같다는 것이다. 먼저간 남편만 생각하면 너무 밉고 욕이 나온단다. 전문가의 정신치료를 받아도, 기도를 해도 여전히 답답하단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날벼락. 뜻밖에 떨어지는 벼락을 말한다. 사실 벼락 자체가 예상 밖에 떨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날'짜를 덧붙여 뜻을 강조한다. 청천에 날벼락 맞은 것은 뜻밖에 당한 재난이나 불행을 말한다. 실제로 자연적인 날벼락을 맞을 확률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나 인생살이에는 벼락 맞을 때가 있다. 미세스 박의 경우 남편 교통사라는 날벼락을 맞았다. 지난주에는 3아들과 아내를 모두 필리핀에 유학 보내고 자신은 찜질방을 돌아다니며 힘들게 일하던 기러기 아빠가 냉동기 폭발사고로 숨졌다. 날벼락이다. 열심히 일하던 회사가 금융위기로 파산을 맞자 거리를 방황하는 고급 실업자들이 늘었다. 날벼락이다. 앞으로 뉴져지에서는 10만 명의 실직자가 생길 전망이란다. 누가 날벼락을 맞을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그동안 날벼락을 많이 맞고 살아왔다는 얘기가 아닐까.

벼락이치면 두렵다. 날벼락은 인생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고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벼락 자체가 아니라 그 너머를 볼 수 있다면 날벼락을 맞아도 의연(毅然)하게 살 수 있다. 윤동윤씨는 열심히 일해서 샌디에고에 아담한 집을 마련했다. 아내도 최근 정식간호사(RN)가 되었고 2살이 채 안된 하은이, 또 갓난 하영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여운 딸들이었다. 그 집에 미국 전투기가 추락했다. 그 넓은 땅에 하필 그 집에... 그야말로 청천의 날벼락이다. 추락 직전 조종사는 낙하산을 타고 탈출했지만 윤씨는 전 가족을 잃었다. 사건 직후 윤씨의 인터뷰 장면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전투기 조종사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를 용서합니다. 조종사가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는 미국의 보물이며 그를 탓하지 않고 그에 대해 격한 감정도 없습니다. 그는 최선을 다한 사람입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전국에서 윤동윤씨에 대한 온정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자기가 받은 극한 슬픔에도 의연하게 설 수 있는 윤동윤씨. 이런 한국 이민자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지금은 슬프겠지만 그에게는 더욱 아름다운 일들이 펼쳐질 것이라고 믿는다. 날벼락에도 당황하지 않고 의연한 사람은 상급이 따르기 때문이다.

박봉애 씨는 뉴져지에 이민 와서 작은 사업으로 돈도 모으고 집도 사고 애들 공부도 시켰다. 마지막 삶을 가장 의미 있게 보내고자 모든 재산을 팔고 케냐 선교사로 들어갔다. 7년 동안 열심히 사역하면서 하루 한끼 먹고사는 아이들에게 세끼를 먹이며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작년 몸이 좀 불편해서 검진을 받았더니 직장암 3기 판정이 내렸다. 날벼락. 박 선교사는 앞이 캄캄했다. '하나님, 이러실 수가 있어요? 내가 얼마나 당신을 대신해서 7년 동안 뼈빠지게 일했는데 직장암 말기라뇨.' 이렇게 따지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녀의 첫 번째 기도는 의연했다. "하나님, 왜냐고 묻지 않겠습니다." 그녀는 믿음으로 모든 과정을 이겨내기 시작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승리했다!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케냐의 굶주린 아이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박 선교사님은 병자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병든 아이들이 선교사의 기도를 받으면 치유되었다. 얼마 전 우리 교회에서 간증을 하며 기도를 하실 때는 각 개인들의 문제를 정확히 집어내고 기도해 주셔서 외적인 질병뿐 아니라 내적인 질병도 치유를 받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날벼락은 시도 때도 없이 내린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의롭게 살아도 날벼락을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을 원망하지 마라. 그 사람을 미워하지 마라. 하나님께 삿대질하지도 마라. 의연함을 잃지 않으면 곧 좋은 때가 있다. 혹 당신의 마음은 날벼락으로 시커멓게 타있지는 않은가?

(최혁 목사 / 포도나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