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난 비늘

12지 동물 중에서 용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 동물이다. 용을 본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데 용에 대한 기록은 엄청 많다. 용은 마음대로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기도 하고, 불을 내 뿜기도 한다. 중국 전국 시대의 사람 한비(韓非)가 용에 대하여 한비자 세난편에 쓴 대목은 좀 놀랍다. 현실주의자이며 법가의 대표인 그가 용을 실제 동물처럼 묘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용은 상냥한 동물이다. 길들면 타고 다닐 수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 목 아래에 길이가 한자나 되는 거꾸로 난 비늘이 한 장 있는데 만일 이 비늘을 건드리는 자가 있을 때에는 용은 반드시 그 사람을 죽여 버린다."

이 거꾸로 난 비늘을 역린(逆鱗)이라고 한다. 용은 온 몸에 단단한 비늘로 쌓여 있기 때문에 어떤 무기로도 용을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역린이 문제다. 이 역린은 용의 심장 바로 앞가슴에 달려 있기 때문에 칼이나 창이 이곳을 공격하면 쉽게 뚫고 들어와 용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안긴다. 용도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상대가 누구든지 역린 쪽으로 가까이 오면 본능적으로 흥분한다. 분노가 폭발하여 잔인하게 상대방을 공격하게 된다.

사람에게도 역린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치명적인 약점, 즉 열등감을 갖고 있다. 그 약점은 용처럼 겉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다. 평소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 이 무의식 속의 역린을 건드리면 분노가 폭발한다. 소위 말해서 뚜껑이 열리는 것.

당신의 마음 속에 어떤 역린이 도사리고 있는지 아는 것은 행복한 인생을 사는데 매우 중요하다. 잘 발견하여 아는 것만으로도 사회 생활에 많은 유익이 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참을 수 없어' 바로 그것이 당신의 역린이다. 그 부분을 파 들어가면 내면의 상처가 발견된다. 발견하여 치료되지 않으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것 때문에 반복적으로 삶이 힘들어진다. 부부싸움은 어느 가정이나 조금씩 있지만 칼로 물 베기로 끝난다. 그러나 내면의 상처가 깊은 사람은 사소한 싸움이 커져서 칼로 몸 베기로 끝나기도 한다.

성경의 첫 살인사건은 가인과 아벨의 제사로부터 시작된다. 가인은 제사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므로 형식적인 제사가 되었다. 동생 아벨은 정성껏 제사를 드렸다. 당연히 아벨의 제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 그때 가인의 얼굴색이 변했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말한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냐.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은 가인이 엄청난 죄를 지을 수 있는 역린이 그 마음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보셨다. 아마 부모 아담과 하와로부터 계속된 꾸중이 있지는 않았을까? '너는 왜 하는 일이 항상 동생보다도 못하냐?' 하나님은 가인이 그것을 깨닫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충고하신다. 그러나 그는 동생을 들로 불러내어 죽여버렸다. 자신의 내면적 상처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한 결과다.

내면의 상처는 누구나 있다. 대부분 어린 시절에 나도 모르게 형성된다. 리타우어(Fred Littauer)는 내면 치유를 위해 '과거 기억을 끌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그것은 어린 시절에 당한 경험들,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그 당시에는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경험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당시에는 의식적으로 건 무의식적으로 건 기억 창고 속에 깊숙이 억눌려 있었다. 물론 이제는 완전히 희미해진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다 찾아낼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쓸데없는 일로 얽히게 될 것이다. 성인이 된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가 있을 때에만 구체적 근원을 캐낼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남의 나라 눈치를 보며 억눌려 살아야했던 한국인들은 남보다 나아야, 남보다 빨라야 한다는 생각이 어느 민족보다 강하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파 잠을 못 잔다. 최고를 지향하는 것은 많은 장점이 있지만 최고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극대화자(Maximizer)는 오히려 그것이 역린이 되어 불행해지기 쉽다. 줄기세포 만드는 과정에서 김선종씨에게 모든 것을 의존했던 황우석 박사의 불행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최고의 대학, 최고의 상, 최고로 빠른 기술....

당신은 어떤 역린을 갖고 있는가? 그 역린을 어떻게 다스리며 살 수 있는가?

(최혁 목사 / 포도나무교회)

(창세기4: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