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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크 아탈리는 한국민이 2025년에는 아시아 최강국이, 2050년에는 세계 최강국의 대열에 들어가게 될 것을 말한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듣기만 해도 황홀한 얘기다. 자크 아탈리는 높은 강연료나 받으며 한국민에게 장밋빛 청사진을 그려주는 싸구려 화가가 아니다. 프랑스에 현존하는 최고의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미래학자다. 그는 한국의 발전 가능의 근거를 정보통신, 인터넷 등 미래를 이끌 기술적 역량에서 찾았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 사람들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정보통신 기술을 자랑한다. 자끄 아탈리도 한국인들의 '속도 의식'과 남다른 '열정'을 주목하고 있다. 게다가 영국학자가 그려낸 IQ지도에 의하면 세계 최고의 IQ를 가진 동북 아시아인 그룹에 속하고 있으니 아탈리의 예언은 성취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빨리빨리' + '열정'이 가져다 주는 음지는 없을까? '천천히' + '열정'이 가져다 주는 실익을 놓칠 수 있지는 않을까? 한국민 전체가 '조급증'에 걸려 빈약한 내면성에 시달리지는 않을까? 얼마 전 부룬디에서 선교사로 일하는 분의 글을 읽고 공감을 했다. "저도 한국 사람의 특징인 조급증에 걸려 있었나 봅니다. 조급증 환자들의 특징은 물론 인내하지 못하고 쉽지 흥분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쉽게 포기하고... 집 근처에 미국 선교사가 사는데, 부룬디에 오기 위해 2년 간 프랑스에서 언어(불어)훈련을 마치고, 또 2년 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선교훈련을 받고, 그리고 부룬디에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정착하는가 싶더니 벌써 활기차게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저는 준비되지 못하고 마음만 급했나 봅니다. 빨리 언어가 되지 않는다고 자책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일찍 승부하려고 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대작을 위해 몇 십 년을 투자했던 선진처럼 저도 이제 칼을 갈고, 날을 세워야겠습니다."

  얼마 전 내 차를 함께 타고 가던 분이 왜 그렇게 차를 급하게 모냐고 묻는다. 사실 나는 그때 평소보다 얌전하게 차를 모는 편이었는데. 늦은 나이에 미국 신학교에 들어간 나는 빨리빨리 공부했다. 학교에서는 ESL을 통해 영어를 좀더 공부하라고 권했지만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학교 공부만 열심히 했다. 빨리 졸업하고 교회를 개척해야지 언제 ESL 코스를 다니고 있겠는가. 졸업하자마자 뉴욕에서 교회 개척을 서둘렀다. 주위 사람들이 미국 신학교를 졸업하고, 음악도 잘하고, 아내는 교육학을 전공했으니 이 교회는 금방 부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나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첫 예배에 5명의 청년이 함께 예배드렸다. 그러나 그 작은 공간이 곧 사람들로 가득 찰 것이라는 생각에 추호도 의심이 없었다. 그러나 일년간 10명이 넘지 않았다. 다음 해도, 그 다음 해도 마찬가지였다. 8년 간 내 설교를 들은 사람은 평균 8명이었다. 개신교 목사는 성도가 없으면 당장 생활이 곤란하다. 성도들 몰래 공장에서 일하며 밤에만 목회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목회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없이 급하게 목회에 뛰어든 것을 본다. 조급한 내 성격에 대한 대가를 목회 초기에 톡톡히 치른 셈이다.

  인생은 100m 쇼트트랙을 도는 게임이 아니다. 오래 뛰는 마라톤이다. 아니 80-90년을 끊임없이 걸어야 하는 지구전이다. 인생을 길게 볼 필요가 있다. 인생을 길게 보는 사람은 부지런히 산다. 짧게 보는 사람은 조급하게 산다. 성경은 말한다.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젊은 연예인들의 연이은 자살 소식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우울해졌다.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 인기의 부침(浮沈)에 따라 '조'와 '울'이 춤을 춘다. 그러다 '침'과 '울'이 좀 길어지면 견디지 못하고 조급해한다. 여기에 열정적인 성격까지 합해져서 자살로 이어진다. 인기 탈랜트 최수종 씨가 후배 연예인들에게 하는 충고가 마음에 와 닿는다. "초심을 잃지 말라" 처음부터 인기 있었던 사람이 어디 있는가. 처음에는 노래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쁘지 않았는가? 드라마에 출현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지 않았던가? 최수종, 하희라 부부는 자녀교육도 남들처럼 조급하게 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주위에서는 간 큰 부부라고 부른단다. 그러나 남들 다 보내는 학원에 보내지 않아도 애들은 공부만 잘하고, 아름답게 자란단다. 멀리 보는 부모의 안정된 모습 속에서 자녀들은 조급하지 않고 안정감을 갖고 자라기 때문이다.

  당신은 무엇에 조급해 있는가? 너무 급하게 성취하려 하지는 않는가?




잠언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