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당신이 남한 대통령이라면 햇볕정책을 계속하시겠습니까?" 10%정도는 그래도 계속해야 한다는 쪽에, 90%는 수정 또는 철회해야 한다는 쪽에 거수를 했다. 그동안 북한의 인도적 대북 지원 사업을 지지해온 시민단체들도 햇볕정책을 실패한 대북 정책으로 규정하고 있다. 96년부터 북한에 농기계생산공장건설, 병원현대화사업, 어린이급식사업 등을 지원해온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에서 '대북 관계 이대로 좋은가'의 토론회가 있었다. 상임대표로 활동해온 송월주 스님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의 속임수에 당했다"고까지 말했다. 갈수록 꼬이는 남북한 관계. 민족공조를 계속해야 할 것인가? 당신이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독일의 사회학자 퇴니스(Ferdinand Tonnies)는 사회형태를 두 가지 범주로 분류했다. 게마인샤프트(Gemeinshaft)와 게젤샤프트(Gesellshaft). 게마인샤프트는 사랑, 우정을 기초로 인격적, 영속적, 정서적으로 맺어진 집단을 말한다. 가족, 촌락, 신앙공동체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집단에서는 '우리'의식이 중요하다. 반면 게젤샤프트는 이해관계를 기본으로 맺어진 이익집단이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협동하며 그 집단을 유지한다. 이익 집단으로 대표적인 것이 회사, 정당 등이 있다. 국가는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의도적, 계약적, 공식적 집단으로써 게젤샤프트에 속한다. 그러나 한 혈통과 감정을 공유한 게마인샤프트의 성격이 더 강할 수도 있다. 이때는 국가라는 말 보다 민족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북한을 게마인샤프트 쪽에서 보느냐 또는 게젤샤프트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북한을 보는 시각은 차이가 난다.

  게마인샤프트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게젤샤프트에서 중요한 것은 법이다. 잭 웰치가 GE의 CEO에 취임하자마자 첫 번째 한 일은 종업원을 해고하는 일이었다. 회사의 이익에 유익하지 않다면 인정 사정없이 해고시킬 수 있는 것이 게젤샤프트의 법이다. 수해지역에서 철딱서니 없이 골프를 친 한나라당 간부를 윤리위원회는 즉각 제명했다. 곧 있을 선거에 해당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도 게젤샤프트의 논리다. 그러나 게마인샤프트의 논리는 다르다. 가정에서 배우자가 좀 실수했다고 해고하지 않는다. 자녀들이 실수했다고 가족 명부에서 제명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한다.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를 혼동하면 문제가 생긴다. 즉 이해관계를 따져야할 때 인격적 관계를, 인격적 관계를 생각해야 할 때 이해관계의 잣대를 내민다는 것은 저울로 키를 재고, 자로 몸무게를 재려는 것과 마찬가지. 그러나 우리는 이런 실수를 종종 한다. 한 집단의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가 된다.

  통계청 2005년 센서스 조사로 한국 개신 교회의 성장이 멈추었다는 추측이 사실로 드러났다. 개신교는 1995년 19.5%에서 18.3%로 감소되었다. 개신교에 실망한 사람들이 교회를 많이 떠났다. 목사들은 감소 이유로 한국 개신교의 '대외 이미지 실추'를 첫째 이유로 꼽는다. 왜 개신 교회의 이미지가 떨어졌는가? 퇴니스의 이론을 빌리면 교회라는 게마인샤프트를 게젤샤프트로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격적 관계와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할 교회가 이해관계와 법이 우세한 집단으로 변질되어 간 것. 그 때문에 교회 내부 싸움이 그치지 않게 되었다. 그 갈등을 사랑으로 해결한 것이 아니라 법으로 해결하려 한다. 교회 문제가 법정으로 가서 대법원까지 올라간 예가 얼마나 많은지. 이때 개신 교회 대외 이미지 실추는 당연한 것이다.  

  어려운 국가 또는 민족의 문제는 접어두고 지금 내 앞에 있는 가정, 교회는 법보다 사랑, 이해관계보다 인격적 관계가 중요한 집단임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상대방이 완전하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고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선택하고 결정했기 때문에 인격적 관계를 맺고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3:16). 하나님은 자신을 배반한 죄악 된 세상을 어떻게 품고 사랑할 수 있으셨을까? 하나님께서 사랑하기로 결심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게마인샤프트의 세상으로 보셨다.

  당신이 공동체에서 잘 사용하는 잣대는 법인가 사랑인가? 자기 이익인가 인간 관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