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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ill be Here||http://myhome.naver.com/praise1009/i will be here.wma||스티븐 커티스 채프먼은 1962년 켄터키의 파두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채프먼 집안은 온통 음악적인 분위기가 절절 넘치는 집안이었고, 스티븐은 아마추어 작곡가였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인 허비와 함께 "Singing Chapman" 이라는 그룹의 일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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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
학창시절에도 음악에의 관심은 여전히 지속되었습니다. 앤더슨 컬리지에 다니던때에는 "Chapman Henderson" 이라는 아마추어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고요, 형인 허비와 함께 스타 탈렌트 쇼에 나가서 수상을 한 경력도 있었다네요.

81년 그의 평생의 반려자인 매리 베스를 만나 웨딩마치를 올린 뒤 채프먼은 내쉬빌로 근거지를 옮깁니다. 작곡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는 오프리랜드 테마파크에서 싱어와 댄서 (아직도 그는 테마파크 무대에서 다리를 쩍쩍 벌리며 점프하는 사진을 자랑하곤 하죠)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작곡가 시절에 그는 화이트하트, 찰리 다니엘스, 샌디 패티, 글렌 캠벨같이 비교적 유명한 가수들의 노래를 작곡해주면서 기반을 다졌습니다. 사실 그가 데뷔한 87년 즈음에는 이미 작곡가로서의 명망도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음악에 대한 기대들도 컸었죠.

첫 앨범 [First Hand](1987) 이 몇개의 싱글들을 상위차트로 올려 놓으면서 그의 상업적인 입지를 다지게 해준 앨범이었다면, 두번째 앨범 [Real Life Conversations](1988) 는 도브상을 수상한 "His Eye"를 필두로 평단에 그의 음악을 널리 알린 앨범이 되었습니다.

처음 두 작품이 파퓰러한 팝 스타일이었던 반면에 그의 디스코그래피 상에서 특출난 어쿠스틱 사운드를 두드러지게 했던 세번째 앨범 [More to This Life](1989) 을 발표할때 즈음부터 그의 '무시무시한' 도브상 수집이 시작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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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는 90년 이후부터 10년동안 여섯개의 아티스트 상과 여섯개의 남자 보컬상, 그리고 세개의 작곡상을 수상했습니다. 전천후 아티스트라는 닉네임에 딱 들어맞는 엄청난 수상이었습니다.

물론 각각의 노래들과 앨범들이 수상한 내역까지 따르면 거의 40개도 넘는 대기록들이 기다리고 있고요. 이는 80년대에 빌 게이서에 의해 이뤄졌던 대량 수상도 아직 따르지 못하는 기록입니다.

게다가 앨범의 발표도 꾸준한 편입니다. 데뷔후 지금까지 거의 매년마다 음반을 발표해왔고, 뜸해봤자 꽉찬 2년정도가 제일 앨범 출반의 텀이 길었던 경우거든요.

이러다보니 애초부터 소포모어 컴플렉스 따위는 전혀 없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발표하는 앨범마다 평단과 차트를 늘 떠들썩하게 하거든요. 채프먼의 음반들은 주춤한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차라리 전작보다 더욱 배가된 열광과 찬사를 자아냈으면 자아냈었죠.

크리스천 음악계를 뒤흔들었던 웨딩송 "I will be Here"가 수록된 [More to This Life] 발표 이후에는 전형적인 팝 앨범 [For the Sake of the Call](1990)로 고만고만한 스타일의 지속을 이어가나 싶더니, 다시 [The Great Adventure](1992)로 이전의 힛트가 되려 별게 아니었음을 실감시켰습니다. 더욱 강렬해진 사운드와 디씨 토크의 토비 맥키한, 비비 와이넌스등이 게스트로 참가하여 다채로운 음악을 선보여준 이 앨범은 도브상에서 처음으로 '올해의 노래' ("The Great Adventure") 부문 트로피를 안겨주며, 그의 일취월장에 추진력을 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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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입양한 딸 Shaohannah와 함께
(photo by Bill Steber)

음반과 비디오로 출시된 시원시원한 라이브 앨범인 [The Live Adventure](1993) 이후에 나온 [Heaven in the Real World](1994)는 판매량에서 세간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의 디스코그래피상에서 최초로 백만장 이상의 판매량으로 플래티넘을 기록한 거죠. 또 이 앨범의 두 싱글 "Heaven in the Real World"와 "King of the Jungle"은 각각 라디오 차트에서 5주간과 3주간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만의 내쉬빌 사운드로 치장한 성탄 앨범 [The Music of Christmas](1995) 발표후 10주년을 바라보는 시기에 채프먼은 새로운 프로듀서로 브라운 배니스터와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96년 앨범인 [Signs of Life] 에서 채프먼은 그의 전형적인 팝/록 스타일에 모던락적인 부분을 조금씩 가미하기 시작했고 이런 시도가 두드러졌던 싱글 "Lord of the Dance"가 대힛트를 기록하면서 그의 음악적인 전환은 다시 그의 본령으로 들어왔습니다.

이후의 앨범들인 [Speechless](1999)와 [Declaration](2001)은 계속 그의 변화된 모던 사운드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 앨범들은 비교적 싱글파워에 의지해가는 경향이 좀 있습니다만, 전작들에 비해 싱글파워가 두드러졌을 뿐이지 여전히 앨범 전체의 완성도는, 별 이변이 없는한 언제나 평균이상의 만족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현재 가장 최근작은 그의 아내 메리 베스가 총제작을 맡기도 했던 [All about Love]입니다. 사랑을 테마로한 이례적인 컨셉 앨범으로 스케일도 크지만, 무엇보다도 주제의식이 뚜렷해서 눈길을 끌었죠. 역시 그의 가정적인 모습에 크게 강점을 더해주는 그런 앨범입니다.

데뷔 10주기인 97년을 기념해서 만든 컬렉션 [The Greatest Hits]도 빼놓을 수 없지요. 이 앨범을 위해 채프먼은 비틀즈의 음반으로 유명한 런던의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자신의 몇몇곡을 리메이크 했고, 이 곡들중 두 곡이 새로운 싱글들과 함께 컬렉션에 수록 되었습니다. 역시 여간한 컬렉션 앨범들보다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호평을 받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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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워낙 '잘나가기만 하는' 가수이다보니 이런 절정감은 늘 채프먼의 곁을 떠나지 않아왔고, 이 절정감이 되려 그의 무난함의 이미지로 연결되곤 합니다. 그리고 기록적인 음악 활동외의 것들은 정말 그런 것들을 잘 드러내요.

늘 대동하는 세자녀와 아내, (최근에는 그가 후원하고 있는 단체의 도움으로 또 한명의 아이를 입양하기도 했죠) 늘 동안같아 보이는 얼굴, 약간의 변화가 있긴 하지만 그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내쉬빌 스타일... 어떻게 보면 이런 총체적인 평범함이 되려 팬들로 하여금 그를 사랑하게 해주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부분은 그가 크리스천 아티스트로서의 자존감을 늘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이지요. 모던 컨트리분야나 팝 분야까지를 아우른다면 그는 지난 10여년동안 크로스오버의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가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왕성한 음악활동 중에서도 크로스오버의 부분을 다른 맹우들에게 '맡긴' 셈이에요. 그러면서 그의 음악과 가사에 담긴 관심사는 늘 성경과 하나님이었습니다. 이 또한 채프먼이 10여년동안 '무난하게' 그의 음악과 함께 지켜온 부분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변할거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군요. 적어도 스티븐 커티스 채프먼은 현존하는 크리스천 음악가수들 중, 제일 든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