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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ly(Charlie Hall)||http://www.maranatha.co.kr/praise/26/passion Our love Is Lord/06 Madly (Charlie Hall).wma||오늘은 패션의 또 한명의 예배인도자 찰리홀(Charlie Hall)에 대하여 소개한다.
일단 그의 홈에 나와있는 소개를 살펴본다.


그것은 찰리홀에게 있어 긴 여정 이였다. 지난해 그는 많은 곳에 보내심을 받았고 진정한 사람으로 거듭남을 배웠으며, 그리고 음악인으로-무엇보다 중요하게-하나님을 경배하는 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지난 8월 19일, 그의 대학 2년 프로젝트이며 그의 가야 할 길을 보여준  "온더 로드 투 뷰티풀"이 세상에 나오면서 찰리 홀의 사역은 시작 되었다.

최근에 찰리 홀이 배운 많은 것들 중에 하나는, 하나님 앞에 서두르지 않는 다는 것이다. 레코드 레벨이나 앨범 출시 시기라는 것은 창조주께 있어 그다지 큰 의미가 되지 않는 지극히 작은 일이라는 것.. 특별히 그가 당신의 삶을 위한 그만의 시간표가 따로이 있을땐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찰리홀이 원래 그의 첫번째 앨범 "Porch and altar"를 녹음하려 했던  2002년 5월엔 여러가지 좋지 않은 일들이 있었다.
그에겐 50개가 넘는 곡들이 있었으나 서로 잘 맞지 않았을 뿐더러, 그의 삶은 어려운 관계,자신의 음악세계에 대한 의심, 가족일원의 병환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누군가가 말한 "타이밍이 중요하다"라는 말은 이때의 그의 삶을 잘 대변해주는 말 이였다.

"온더 로드 투 뷰티풀"이 완성 될 수 있었을 때에, 찰리홀은 레코딩 스튜디오만으로는 채울수 없는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할 필요성을 느꼈다.
사실, 그것은 그가 그 전 해부터 시작한 사역여행의 연장 이였다.

그는 전통적인 침례교회에서 성장했으나, 한동안 그는 "실패한 사람"이라는 스스로의 자책감으로 인해 교회와 멀어지게 되었다.
그 청소년 시기에 그는 실패감을 맛보았고 그 실패는 그로 하여금 무언가를 더 필요하게 만들었다.

이런 많은 경험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찰리홀 자신을 드러내게 하시고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어 말씀 읽는 것에 깊이 빠지게 되었다.

그의 음악의 포커스가 된 청년 사역에 대한 강한 열정과 소명은, 중학교 시절부터 목사님이 되고 싶었던 그에게 다른 사람을 리드 할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느끼게 하였다.

charlie hall 그로부터 멀지 않은 때에 하나님은 그의 재능을 통해 그의 믿음을 보일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미국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열렸던 한 워십 행사에서 찰리홀은 그가 본것들로 인해 상당한 충격을 받게 되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예배하며, 음악을 통해 하나님과 연결되고 있는 모습-..그 사건 이후로 그가 가야할길은 분명히 결정되었다. 그는 교회에서 리믹스한 자신의 곡을 노래하고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찬양하는 대학 청년회 소그룹 모임과 자신의 시간을 함께 했다. 찰리홀은 이 모임을 일컬어 "가장 기초적이고 간단한 형태의 교회"라 지칭 했다. 그 그룹은 훗날 점점 성장 하여 브릿지 교회가 되었고 찰리홀이 찬양인도자로 서기 시작한 그때부터 지금까지 섬기는 교회가 되었다.

이 시기에 찰리홀은, 패션의 창시자이며 디렉터인 루이 기글리오 목사님과 인연을 맺게 된다. 루이 기글리오 목사님은 천육백만명의 미국 대학 청년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실제를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하시는 분이다.

찰리홀은 이 패션 운동에 함께 참여 하여 세계와 미국 전 지역에서 모이는 패션 원데이 컨퍼런스와 같은 워십 모임에 리더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가 참여 했던 패션 워십 컨퍼런스는 라이브 앨범으로 제작되었고, 그는 곧 패션의 중심 사역자 중의 하나가 되어 백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패션의 5장 라이브 앨범에서 연주하게 되었다.

이 앨범들을 통해 "Better is one day"와 "Heart of worship"과 같은 노래들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찰리홀은 꾸준히 자신의 개인 사역을 하며 2000년도에 "sixstepsrecord"와 계약을 하고 "Porch and altar" 앨범을 출시하게 된다.

하나님을 그 어느때 보다 따르게 된 지금, 찰리홀은 영적인 많은 부분에서 개선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나의 지나친 열정이 나를 지치게 한다"..찰리홀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쥐고 있는것들을 조금은 내려 놓고, 내가 하나님께 해야할 헌신이 내가 풀어야할것들이 아닌 내가 할수 있는 것들이 되야한다" 라고 말한다.

찰리홀은 또한 자신의 두번째 앨범을 위해 여러 다른 방향을 시도하게 된다. " 2003년 어디선가 부터 나의 모든것이 절정에 달했다"라고 찰리홀은 말한다.
그러나 이때에 찰리홀에게 닥친 많은 일들로 인해 그의 작업은 다시 늦춰지게 된다. " 약간의 관계 속의 혼란, 나의 자매의 암투병, 거절당한 몇개의 노래...이런것들로 인해 나의 음악세계와 나의 부르심,그외의 모든것들에 대해 의문점을 갖게 되었다."내가 정신적으로 의지하고 있던 모든것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이 모든것들 속에서 찰리홀은 무언가를 내려놓고 보내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한다. " 모든것들이 어려웠지만 이 모든것들의 바탕에 하나님이 계시며 그 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준비시켜 주실것이다. 이제 내가 누구인지 더욱 확실히 알았으며 나의 부르심과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갑자기 타이밍이 맞아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음악은 마치 날개 달린듯 했으며 패션과 워터마크, 필립스,크레이그앤딘의 프로듀서인 나단 노켈즈로 인해 지도 되었다.

그는 찰리홀의 어린 시절 부터의 친구였으며 같은 밴드 연주자였고, 몇년동안 패션에서 함께한 사역자였다.이때 출시된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일컬어 찰리홀은 " 나의 중심, 내가 해야할 음악"이라고 말한다.

그의 많은 음악들은 그의 교회를 통해 완성되고 결정되었다. "Porch and altar"를 만드는 동안 우리는 쉬지 않고 기도했다 라고 찰리홀은 말한다. 또한 교회로 부터 받은 많은 좋은 영향들이 그의 음악의 빛을 더해 주었다.

싱어이자 작곡자인 리차드 애쉬크로프트와 같은 동역자들이 나중에 함께 그의 사역을 돕기도 하였다. " 마무리 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나는 간단하면서도 성숙된 음악을 좋아한다는것이다.  물론 디지털 음색이나 요란스런 소음도 좋아하지만 그것들의 바탕이 되는 가장 기본적이며 간단한 것에 포커스를 두었다." 라고 그의 새로운 노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스타일이 어떤것인지든간에, 찰리홀의 가장 중심적인 사역은 이것이다.
"나의 할일은 하나님께 우리 모두가 여기 함께 하고 있음을 보여 드리는것" 이라 말한다.

▼참고/찰리홀 홈페이지 ▼번역/ 홀리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