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3.jpg 풀어져야 쓰인다

아파트에 사는 경아는 깨끗한 것을 무척 좋아한다. 집안은 항상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잠자고 나서 이부자리를 깨끗하게 개어 놓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 청소를 하고 출근을 한다. 회사에서 돌아오면 다시 바닥을 깨끗하게 닦는다. 저녁을 해 먹고 또 한번 청소를 한다. 혼자 사는 집인데도 하루에 몇 번씩 걸레로 바닥을 빡빡 문질러 광을 내야 직성이 풀리는 경아. 왜 그렇게 청소를 많이 하냐고 물었더니 더러운 꼴을 볼 수가 없다는 것. 조금 전에 청소해서 깨끗한데 왜 더럽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우물쭈물 댄다.

경아는 한 직장에 오래 있지를 못한다. 처음에는 일을 깨끗하게 처리한다는 칭찬을 듣지만 곧 사람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 남들의 자세에 조금이라도 흐트러짐이 있으면 참지를 못한다. 자기의 잣대를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적용해서 호리라도 빈틈이 보이면 거침없는 '하이 킥' 비판을 날린다. 누가 좋아하겠는가?

인간은 혼자 살게 되어 있지 않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생각이든 무언가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어떤 맺음은 건설적이고 생산적이다. 그러나 어떤 맺음은 병적이고 파괴적이다. 많은 경우 좋은 맺음보다는 나쁜 맺음을 갖고 살기 쉽다. 역기능적인 가정에서 자랐다면 더욱 그렇다. 또한 상황이 힘들어질수록 악한 것에 가까이하기 쉽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이 악연은 중독으로 발전되어 인생을 더욱 꼬이게 만든다. 중독성으로 발전되면 만족이 없고 계속 그 강도나 양을 늘이게 된다. 경제적 불황이 지속되면서 마약 중독, 알콜 중독, 노름 중독, 포르노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개인에게도 불행이지만 그 불행은 가정과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진다.

악한 묶임에서 풀어질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연세대 정신과 이성훈 박사는 '일단 떠나라'라고 말한다. 대부분 내가 묶여 있는 것을 잘 안다. 경아의 경우처럼 그 원인을 잘 알 수 없다면 빨리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외적으로 묶여 있는 것은 금방 드러나지만 내적으로 깊이 묶여 있는 것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일단 그 악한 뿌리가 밝혀지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곳에서 떠나야 한다. 쉽지 않다. 오랜 세월동안 묶여진 마음이라면 더더욱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끈기 있게 풀어야한다. 묶임에서 풀어지게 되면 놀라운 보상이 따른다.

여자 집사 한 분이 오랫동안 자기 남편과 함께 교회 다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남편은 술을 좋아한다. 거의 매일 회사가 끝나면 취해서 들어온다. 이런 남편이 밉고 싫었다. 자녀들에게도 창피했다. 어느 날 밤도 술을 잔뜩 먹고 인사불성이 되어 들어온 남편은 들어오자마자 응접실에 쓸어져 코를 골았다. 원수 같은 남편! 남편을 겨우 업어 옷을 벗기고 침대에 누인 부인은 한숨이 나왔다. 하나님께 따지기 시작했다. '하나님, 어떻게 이런 남자를 배우자로 주셔서 나를 괴롭게 하십니까. 10년 동안 내 마음이 시커멓게 타버린 것을 모르십니까? 앞으로 언제까지 이 원수와 살아야 합니까.' 남편 술 바라지에 진저리가 났다. 부글거리는 속으로 하나님께 따지고 있을 때 한 음성이 마음에 울렸다. '얘, 그래도 너는 남편이 있지 않니?' 부인은 깜짝 놀랐다. '맞아, 영숙이는 남편이 교통사고를 죽은 후에 혼자 사는 것을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 몰라.' 그러고 보니 남편만 문제가 아니라 남편을 향해 꽁꽁 묶여 있는 자기 마음도 문제였다.

그날 밤 남편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10년 동안 묶여 있었던 마음의 응어리를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품었던 악한 생각에서 떠나기 시작하니까 남편의 다른 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은 술은 많이 마셨지만 꼭 집에 들어와서 잤다. 남편은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야구하는 것을 좋아했다. 남편은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월급을 많이 받고, 꼬박꼬박 집으로 가져왔다. 어쨌든, 어쨌든 지금 따뜻한 손을 잡아 볼 수 있는 남편이 내 옆에 누워 있었다. 묶여진 생각이 풀어지니까 부인의 얼굴에 어느덧 미소가 떴다. 남편을 보고 배시시 웃고 있는 아내. 그때 남편은 목이 탔는지 갑자기 눈을 떴다. '당신 뭐가 좋아서 그렇게 히죽히죽 웃고 있는 거야.' '당신이 내 옆에 있는 것이 너무 감사해요.' 진정이었다. 물끄러미 아내의 떨리는 진정성을 접수한 남편. 그때 남편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떨어졌다. '알았어. 내가 다음 주일부터 교회에 나갈게.' 남편은 아내를 꼭 끌어안고 또 다시 잠이 들었다.

묶인 풍선은 날아가지 안는다. 묶여진 나귀는 쓰임 받지 못한다. 풀어지지 않은 마음은 남의 가슴에 또 다른 응어리를 만든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묶여 있는지 아는가?

(최혁 목사 / 포도나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