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jpg

낮이 짧아져서 그런지 마음이 쉽게 우울해지고 어두워진다. 정신차리고 보니 어느새 어둠이 내 마음 가운데 들어와 있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많은 이민자들이 어둡다. "요즘 행복하세요?" 어떤 분에게 물었더니 대뜸 대답이 돌아왔다. "목사님, 내년에 회사에서 짤릴 수도 있는데 어떻게 행복하겠어요?" 다른 분에게 여쭈었다. "행복하세요?" "하루 12시간 이상씩 열심히 일했는데도 먹고살기는 점점 힘들어져요. 행복요? 허허허" 50대 사장은 허탈한 웃음 속에 애써 자신의 어둠을 숨기려하고 있었다.

11월부터 Summer Time이 해제되면 갑자기 겨울의 어두움이 침투해온다. 요즘은 오후 4시만 좀 넘어도 어둑어둑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계절성우울증(Seasonal Affective Disorder)을 앓는다. 위도가 높은 북반구나 날씨나 나쁜 지역에서는 더 심하다. 일조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근 버지나아 대학 프로벤 시오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220명을 조사한 결과 130명이 계절성우울증으로 진단을 받았다. 수면을 많이 취하지만 깊은 잠을 못 자기 때문에 무기력해진다. 단 음식이나 탄수화물을 많이 찾게되어 체중이 늘기도 한다. 이 병은 대부분 가을에 시작해서 겨울에 심해지지만 봄이 되면 눈 녹듯 사라지는 병이다. 이 겨울에 조금 우울하다고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오래 지속하거나 심상치 않게 악화되는 듯 싶으면 빨리 치료를 받아야한다.

어둠은 하나의 세력이다. 뱀처럼, 검은 안개처럼 슬며시 우리의 삶에 들어오기 때문에 눈치채기가 힘들다. 일단 들어와 세력을 형성하면 어둠은 우리의 주인 노릇을 한다. 이때 눈치채고 강하게 거부하지 않으면 죽음까지 갈 수 있다. 탈랜트 C씨의 행복한 미소는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혼을 하고 두 자녀를 키우며 살아가는 모습, 저축왕까지 되어 오뚜기처럼 사는 모습에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겉과 속이 달랐다. 겉은 행복하게 보였지만 속은 어두웠다. 어둠에 잡히면 원망과 불평이 생긴다. 결국 "세상이 원망스럽다"는 말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아직도 예쁜데. 아직도 인기가 있는데. 사랑하는 두 아이가 있는데. 이제 물질적으로 어려움은 없는데....

행복이란 무엇일까? 사진기 앞에서만 행복이 있는 걸까? 어떻게 해야 진정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예수가 큰 무리를 보며 제자들에게 말했다. "저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사흘이 되었는데 먹을 것이 없구나." 먹는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욕구. 먹을게 없으면 가장 비참하다. 먹을 것이 없는 아프리카의 빈민들에겐 행복, 불행을 얘기하는 것조차 사치다. 제자들의 대답. "이 광야에서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제자들의 대답은 떡이 없다는 것. 예수는 되묻는다.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여기서 우리는 예수와 제자들의 사고 출발점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본다. 제자들은 없는 것을 생각했다. 예수는 있는 것을 생각했다. 큰 차이다. 되는 사람은 지금 있는 것을 보는 사람이다. 안 되는 사람은 없는 걸 보는 사람이다. 행복한 사람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불행한 사람은 나 없는 것만 본다. 그리고 남 가진 것만 보며 부러워한다. "부러워, 제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서 빵 구어 놓고, 커피 타 놓고 아내 깨길 기다린다는데..." 언젠가 어떤 할머님이 내 손을 꼭 잡고 놓질 않는다. "먼저 간 남편 손이라도 한번 잡아 봤으면 좋겠어요." 그 할머니에게 지금 남편이 있다면 매일 새벽에 일어나 빵 구어 놓고, 커피 타놓고 기다릴걸?

랄라는 북아프리카의 한 부족에서 부모도 모른 채 태어난 소녀. 학교도 모르고, 글자도 모르고. 자연과 더불어 자연처럼 살아온 랄라가 프랑스로 흘러 들어간다. 거지처럼 살던 이민의 삶은 사진작가를 만난 이후 갑자기 신데렐라가 된다. 인기, 명성, 돈이 들어왔다. 그러나 랄라는 생각한다. "이건 사는 게 아닌데." 결국 랄라는 문명과 동떨어진 사하라 사막으로 다시 돌아간다. 올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르 끌레지오의 "사막"은 이렇게 끝난다. "무화과나무 그늘이 몹시 시원하고, 또 감미롭기까지 하다." 랄라는 전혀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자기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의 가치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답답한가? 어두운가? 혹 당신은 없는 것만 보고 있지는 않은가? 당신에겐 지금 무엇이 있는가?

(최혁 목사 / 포도나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