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교과서를 보는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해서 생전 처음 학교라는 곳을 들어갔을 때 나는 불안하고 떨렸다. 숫기가 부족했던 나는 처음 보는 학생들이 가득 앉아 있는 작은 방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엄마와 처음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두려운 나머지 금방 눈물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예쁜 여자 선생님이 오셔서 책을 몇 권씩 나누어주셨다. 국어 1-1이라고 써 있는 책을 펼치니 포근하게 생긴 그림들이 나왔다. 가방을 매고 있는 나 같은 아이가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이제 막 한글을 읽기 시작한 나는 천천히 첫 장의 글자들을 읽어보았다.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둘째 페이지를 여니 새로운 그림과 글이 나왔다. "아가 아가 우리 아가 예쁜 아가" 어느덧 내 마음속의 불안은 사라지고 교과서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첫 교과서에 대한 경험이다.

교과서는 교육용 책을 말한다. 즐기기 위한 책이 아니기 때문에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교과서는 교육의 기본이 되는 책이다. 그 분야의 기본 원리가 서술되어 있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교과서를 싫어하면서도 교과서를 끼고 살지 않을 수 없다. 한번 대충 보고 손떼는 책이 아니라 여러 번 보면서 숙지해야 한다. 어떤 부분은 줄을 긋고 암기해야 한다. 어떤 부분은 깊이 생각해야 한다. 좋은 책은 원리가 담겨져 있는 교과서 같은 책이다.

인생에도 교과서가 있다. 어떤 교과서를 보고 공부했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남재희씨는 유신정권과 전두환 정권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던 사람이다. 그 딸 영숙은 고려대학교를 다니던 학생이었는데 반정부시위를 하다가 구속되었다. 그 언니도 마찬가지로 데모하다 구속이 되었다. 어떻게 국회의원 딸들이 자기 아빠의 생각과 반대로 나갈 수 있었을까? 그들이 본 교과서 때문이었다. 영숙이 여러번 숙지하며 영향 받았던 책은 이영희의 '우상과 이성' '전환시대의 논리'였다. 이런 책들을 통하여 좌파 사상에 젖어들게 되었고 반미데모에 앞장을 섰다. 84년 영숙은 남편을 따라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인디애나 주립대학의 한 책방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한국에서는 제한 서적으로 볼 수 없었던 교과서 같은 책들이 가뜩 진열되어 있었기 때문. 그녀는 데모하다 죽은 친구를 위해서 열심히 공부했다. 스탠퍼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좌파경제이론가가 아니었다. 그녀는 지난 FTA의 협상분과장이 되어 시장경제 전파의 최전선에 섰다. 왜 그녀가 이렇게 변했는가? 무엇이 그녀를 좌측에서 우측으로 가게 했는가? 교과서 때문이다. 아니 올바른 교과서를 공부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20여명의 한국 젊은이들이 탈레반에게 인질로 잡혀 고생을 하고 있다. 20대, 30대의 청년들이다. 저들을 체포하고 몸에 폭탄 띠를 두르고 인질들을 감시하는 젊은이들도 아마 같은 나이 또래의 청년들이리라. 그런데 왜 한쪽에서는 그 위험한 지역까지 가서 봉사활동을 펴는 것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자기 민족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청년들을 잡아 가둔 것일까? 교과서 때문이다. 탈레반은 5세 때부터 코란을 암기하며 코란대로 살기를 희망하는 청년들이다. 코란에 입각한 신정국가를 꿈꾼다. 그러나 그 이념이 현대 사회와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반사회적, 반인륜적, 반문화적이 되기 쉽다.

교과서(text)는 삶의 정황(context)에서 이해되지 않으면 위험하다. 쉽게 교조적이 되기 때문이다. 오래된 책일수록 그 책이 말하는 본질적 요소를 잘 숙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책들은 일차적으로 그 당시의 문화적 상황을 통해,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문화적 상황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비본질적 요소다. 그런데 비본질을 본질로 착각하고 현대 사회에 적용하려하면 무리가 생긴다. 성경은 수천 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온 대표적인 인생 교과서이다. 그런데 출애굽기에 써 있는 대로 3천년 전에 입었던 제사장 복장을 지금 영적 지도자가 입고 있어야한다고 주장한다면 웃기는 일이다. 레위기에 써 있는 대로 그 당시 제사 드렸던 방식으로 소를 잡고, 양을 잡아서 제사 드린다면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반사회적, 반역사적 이벤트가 될 것이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교과서의 본질적 가르침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그러기 때문에 한국의 젊은이들은 자기의 휴가도 반납하고 자기 돈을 드려서 땀을 흘려가며 사랑의 봉사를 하고 있다. 저들이 아무런 사고 없이 조속히 귀환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당신의 삶에는 어떤 교과서가 있는가? 당신은 그 교과서를 어떻게 읽는가?

(최혁 / 포도나무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