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그리 정신

  어렸을 때 처음 운동 경기를 들으며 흥분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저녁 때 이불을 깔고 아버지는 제니스 진공관 라디오에 열심히 귀를 기우리고 계셨다. 그 옆에 누워 있었던 나도 저절로 그 경기를 듣게 된 셈. 권투선수 김기수와 벤베누티 선수의 주니어 미들급 세계 챔피온 전이었다. 그 당시 온 국민이 열광하던 권투시합. 육영수 여사가 김기수 선수를 직접 불러 큰 인삼 한 뿌리를 주었다던가? 어쨌든 김기수 선수는 벤베누티에 판정승을 거두고 한국 최초의 세계 챔피온이 되었다. 1966년 6월 25일의 일. 그 뒤 한국에는 권투 열풍이 불었다. 계속 세계 챔피온이 나왔다. 동양 챔피온은 오히려 시시할 정도였다. 홍수환, 유재두, 염동균, 박찬희.... 80년대엔 무려 29명의 세계 챔피온이 나왔다. 한국 선수들끼리 싸울 때도 많이 있었다. 그 당시 '권투'하면 한국이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는 세계 챔피온이 있는가?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졌다. 현재 WBA 전 체급에 한국 챔피온은 한 사람도 없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더 이상 '헝그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권투는 대표적인 헝그리 스포츠다. 배고픈 사람, 가난한 사람들이 이를 악물고 하는 경기다. 영화 '록키'처럼 전혀 예상치 않았던 사람이 상대방을 때려눕히고 신데렐라처럼 각광을 받을 수 있는 스포츠다. 그러므로 주먹 좀 쓴다는 젊은이들은 누구나 '권투 구락부'를 기웃거렸다. 영광의 챔피온 밸트를 찬 순간부터 돈, 명예, 인기가 한꺼번에 따라다닌다. 일약 스타가 된 그는 이제 이를 악물고 연습하는 일에서 서서히 물러나게 된다. 포만감은 헝그리 정신을 잊게 한다. 헝그리 정신이 사라질 때 챔피온 밸트는 또 다른 헝그리 정신자에게 돌아가게 마련이다.

  헝그리 정신이란 무엇인가? 조관일 박사는 헝그리 정신을 이렇게 설명한다. "헝그리 정신은 지난날을 잊지 않는 불망의 정신이며,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는 반성의 정신이다. 풍요로부터 발생한 나태와 무기력을 치유하는 활력의 정신이요, 고난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갖고 줄기차게 전진하는 도전의 정신이다. 초심을 항상 견지하는 겸손의 정신, 그리고 풍요의 수렁에 빠지지 않는 각성의 정신이며 지속적인 반영을 구가할 풍요의 정신이다.”여기서 초심이라는 단어, 겸손이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헝그리 정신은 처음 가졌던 겸손의 정신이다. 포만감은 겸손의 정신을 잊게 만든다. 포만감은 앞으로의 목표를 상실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그 결과는 멸망으로 간다. 성경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구절이 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라는 말을 일찍부터 인류에게 교훈하고 있다. 즉 배부르면 망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경제 철학자 찰스 핸디는 "헝그리 정신"에서 풍요만 좇는 자본주의에 그 다음 목표가 없다는 것을 주시한다. "우리 시대의 최대의 빈곤, 그것은 바로 '영원의 결핍'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배부른 돼지와 별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어떻게 헝그리 정신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인생의 목표가 계속해서 물질에 있어서는 안 된다. 찰스 핸디의 말이다. "충분히 커지면 더 커지려고 하기보다는 더 좋아지려고 해야 한다" 인생의 목표는 숫자가 커지고 많아지는 것에서 바뀌어야 한다. 양적인 것에서 질적인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양적 헝그리에서 질적 헝그리로 변화해야 한다. 이런 변화가 없으면 인생은 동물처럼 무의미하다. '질적 헝그리 정신'이란 무엇일까? 간단히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나눔이라고 할 수 있다. 양적 헝그리 정신이 나 자신을 위해, 남보다 많이 쌓고, 빨리 쌓기 위해 뛰어온 정신이라면 질적 헝그리 정신은 다른 사람에 나누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정신을 말한다. 이때 인생은 '동물격'에서 진정한 인격으로 승화 발전하게 된다.

  원종수 박사가 멋있는 이유는 서울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는 데 있지 않다. 모든 휴가를 모아 여름 수개월간 아마죤 원주민들에게 봉사하며 삶은 나누는 데 있다. 이용규 박사가 멋있는 이유는 그 힘든 하바드에서 Ph.D를 취득했다는 데 있지 않다. 그 많은 초청을 거부하고 몽골의 작은 대학교에서 그 나라 젊은이들과 자신의 삶을 나누는 데 있다. 무언가 가졌을 때 그것을 나타내는 사람은 패망으로 가는 배부른 사람이다. 그러나 그 가진 것을 남을 위해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멋진 사람이다.  

  정해년. 돼지해. 정말 배부른 황금돼지가 부러운가? 당신은 무슨 굶주림으로 살아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