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블루스

  나는 겨울이 되면 12월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산타 할아버지가 와서 선물을 잔뜩 놓고 갈 것이라는 부푼 기대감? 그럴 나이는 지났다.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동짓날이 지나기 때문에 기다린다. 12월 22일을 기점으로 낮의 길이가 조금씩 늘기 시작한다. 난 어둠이 싫다. 요즘 같은 날은 4시 좀 지나면 해가 진다. 아침 7시가 지나야 해가 뜬다. 14-15시간의 긴긴 밤을 보내야한다. 과학이 발달된 현대 사회에서도 인간의 마음은 자연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12월에 일년 중 자살자 수가 가장 많은 것도 아마 일조량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다른 동물들은 겨울잠을 자는 이 계절에 인간은 지난해, 새해를 갈라놓고 우울증에 빠진다. 차라리 새해의 시작을 하지로 잡았다면 인간의 우울증이 좀 완화될 수 있었으려나? 어두운 시간에 한 살 더 먹는 다는 것과, 밝은 시간에 한 살 더 먹는 것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남성보다 여성이 두 배로 더 나타난다. 거의 천 이백 만 명의 미국 여성이 매해 우울증을 경험한다. 어린 나이보다 노년층에 우울증이 더 많다. 65세 이상의 노인들 중에는 약 15%가 우울증 증세를 지니고 있다. 양로원에 장기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노인들의 우울증 증세 수치는 평균 25%에 달한다. 그렇다면 이민자 한인 할머니의 우울증은? 얼마 전 중앙일보의 기사에 의하면 뉴욕일대 65세 이상 아시안 노인 여성의 40%가 우울 증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일본 할머니들이 가장 높은 수치로 76%나 되었다. 베트남 64%, 인도 50%, 중국 45.7%에 비해 한국 할머니들은 24%로 비교적 낮게 나왔다. 아시안 할머니들의 경우 자신의 정신 문제를 남과 상의해서 해결할 수 없고, 자신의 문제를 남에게 잘 표출하지 않는 문화적인 요인이 우울증을 부추길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할머니들은 왜 평균보다 16%나 낮은 수치를 보이는 것일까? 얼마 전 장수 하는 뉴져지 버겐카운티 한인 할머니들의 조사와 연관지어 보면 신앙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80, 90세가 되어서도 매주 한, 두 번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린다.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봉사한다. 사람들과 끊임없는 교제를 나눈다. 일본, 중국, 월남 할머니들이 갖지 못한 환경을 한인 할머니들은 갖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 배울 것이 있다. 우울증은 내가 노력하기 따라 약화 내지는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활동력이 약한 사람, 표현력이 약한 사람일수록 심한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그러므로 마음이 우울하다면 더욱 나가 활동하도록 하라. 사람들 만나는 것을 즐거워하고 자신을 자꾸 표현하라. 나 자신에 묻혀있지 말고 남에게 관심을 보여라.

  미국에 와서 처음 큰 병원을 방문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문 앞에서부터 머리가 하얀 할머니 두 분이 안내를 하고 있었다. 병원 여기저기에 병자들의 휠체어를 끌어주고 섬기는 할머니들도 계셨다. 모두 자원봉사를 하고 계시단다. '아니, 연세 드신 분들이 저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그들의 자원봉사는 결국 자신들의 삶에 큰 활력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그렇게 살게 되어 있다. 고인 물은 시간이 지나면 썩지만, 흐르는 물은 언제나 신선하다. 자신을 풀어 남에게 주는 삶을 건강하고 아름답다.

  고등학교 때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의 연극에서 스쿠리지 역을 맡은 적이 있었다. 스쿠리지는 지독한 구두쇠. 돈은 많았지만 추워도 돈이 아까워서 불을 때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전날 꿈속에서 세 영을 만난다. 꿈을 깬 후 스쿠리지는 새로운 날을 맞는다. 런던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전 재산을 나누어준다. 그는 인생이 이렇게 아름답고 즐거운 것이라는 것을 나눔을 통해 알았다. 쥐고 있으면 한줌밖에 되지 않지만, 나누면 그 한줌으로 수백, 수천 명의 생명이 살아난다. 그 나누는 자에게는 우울증이 걸릴 시간은 없다. 늙는 것을 한탄할 여유조차 없다. 인생은 그 나눔 자체로 아름다워 지는 것이다. 이차대전 때 수백 명의 유대인들을 도와준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 오스카는 말년에 이런 후회를 한다. "그때 더 많은 재산으로 더 많은 생명을 구했었더라면." 성경은 말한다.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당신의 삶의 에너지는 고여있는가, 흐르고 있는가? 당신이 이 겨울에 돌 보아주어야 할 이웃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