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때때로 칼도 들어라.

  어느 날 나의 모친은 가슴에 몽우리가 잡히는 것을 발견했다. 의사에게 검사를 받았다.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별것 아닌 것 같다고 진단했다. 가끔 젖가슴에 여러 가지 이유로 몽우리가 생길 수 있으나 조금 있으면 없어진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그러나 수개월이 지났는데 그 몽우리는 없어지지 않고 더 딱딱해졌다. 서울의 전문 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받았다. 암이었다. 그것도 많이 전이가 된 상태. 놀란 어머니는 급하게 수술을 받아야했다. 그러나 이미 시간이 늦었다. 아들이 유학마치고 돌아오기만 기다리시던 어머니는 결국 60을 좀 넘기고 소천하셨다. 생각하면 화가 난다. 왜 첫 의사는 별것 아닐 것이라는 소견을 내 놓았을까? 돌팔이 의사 아닌가? 돌팔이의 진단은 전문성이 없고 무책임하다.

  모든 행동은 현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느냐의 결과로 나온다. 정확한 진단은 상황을 유익하게 만든다. 잘못된 진단은 한 인간을 또는 한 가정을, 더 나아가서 한 국가를 불행으로 이끌 수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을 통일하고 조선과 명나라까지 치려는 야심을 품고 군비확장을 했다. 이 정보를 입수한 조선 조정에서는 논란이 일어났다. 1590년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이 통신사로 파견되어 일본의 도요토미를 만났다. 그러나 돌아온 정사와 부사의 보고는 달랐다. 서인 황윤길은 일본이 많은 병선을 준비하고 있고 도요토미는 보통 인물이 아니라고 보고했다. 동인 김성일은 도요토미의 사람됨이 서목(鼠目)이라 두려워할 바 없다했다. 함께 동행했던 서장관 허성은 동인이었으나 서인 정사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럼에도 선조를 비롯한 조정 대신들은 김성일의 손을 들어주었다. '별 것 아니야. 왜놈들이 그래봤자...' 그들의 상황 진단은 곧 행동으로 옮겨졌다. 각도에서 성을 쌓는 등 방비를 서두르던 일을 중지시켰다. 이이의 10만 양병설 건의는 묵살되었다. 일본인 겐소의 말을 전해듣고 일본 침략은 확실하다고 보고한 선위사 오억령은 파직 당했다. 그 결과 1592년 4월 14일 700척 병선에서 내린 1만 8천명의 왜군은 부산성을 삽시간에 점령하고 파죽지세로 북상했다. 임진왜란의 시작. 20일만에 서울은 함락되고 선조는 몽진을 떠났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상황을 심각하게 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상황을 심각하게 보는 것은 긴장을 유발한다. 그러므로 긴장을 조성하는 이성적 진단보다는 감성적 진단을 자주 내린다. '별 것 아닐 거야.' 상황이 혼란해져서 확실한 진단을 내리기 어려울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유익할까? 심각한 쪽으로 보고 준비를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유익을 가져온다. 제일 딱한 것은 심각한 상황인데도 심각한 줄 모르고 딴청 피우는 무지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충격적인 말을 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평화가 아니라 칼이라니. 예수는 사랑을 전파하는 종교지도자가 아닌가? 그 예수가 이 세상에는 어정쩡한 평화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잘못을 도려낼 칼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지금 이 세상의 병은 약으로 고쳐질 병이 아니다. 칼로 수술해야 할 단계로 심각하다는 진단이다. 누가 피 흘리는 칼질을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이 칼은 사람을 죽이는 칼이 아니라 살리는 칼이다. 살리기 위해 때때로 피를 흘려야 한다.  

  사랑한다면 칼도 사용하라. 채찍도 사랑하라. 때때로 단호한 칼질이 없다면 인생은 멸망으로 들어가게 된다. 부모의 적절한 제재가 없이 자란 아이들은 자라서 남에게 피해를 준다.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 - 선생, 배우자, 친구들에게 부담이 된다. 오랫동안 자녀 교육에 대하여 연구한 바움린드(Fanny Baumlind)의 보고는 놀랍다. 제일 성숙한 자녀들은 부모의 당근과 채찍을 골고루 받은 자녀들, 중간이 채찍만 받은 자녀들, 가장 문제가 되는 자녀들이 당근만 받아온 자녀들이었다.  

  북한 핵실험 후 남한 정부는 정확한 상황 진단을 못하고 있다. 당근을 들어야 하는 건지, 채찍을 들어야 하는 건지. 당신이 남한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대통령을 계속 비난하는 것도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다. 대통령이 구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것도 아니지 않는가? 수년 전 중앙일보에서 정치인들 성향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내 기억으로 현 대통령은 좌측 맨 끝이었다. 그의 성향을 알고도 그를 선택한 것은 국민들이다. 그러므로 그때 판단의 열매를 지금 따고 있는 것 아닌가. 당신이 지금 현 상황을 진단하는 것이 미래의 열매를 만든다.  

  당신은 자신의 현재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는가? 지금 어떤 처방이 필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