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에 미국을 강타한 소식은 웨스트 버지니아 탄광 사고. 쌔이고(Sago)의 탄광 폭발사고로 13명이 갇혔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생존을 위해 기도했지만 맥클로이(McCloy)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명을 달리했다. CNN의 너무 성급한 뉴스 보도로 가족들은 잔뜩 희망에 부풀었었지만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41시간 동안 갱에 갇혀있었던 맥클로이도 코마 상태에서 생명이 위험한 듯 했지만 이제 스스로 숨을 쉴 수 있는 상태다. 그러나 담당 의사는 '아직 갈 길이 멀다'라고 그의 상태를 조심스럽게 말한다. 맥클로이의 부인은 남편이 온전한 상태로 회복하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그녀의 희망이 성취될 수 있기를 빈다. 희망이 있는 한 살고 있는 것.

  이스라엘은 77세의 샤론 총리가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장시간 수술로 대뇌 출혈은 멈췄으나 뇌사 상태가 어느 정도 지속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병에서 회복되더라도 그가 다시 정치일선에 복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샤론 총리의 병세에 각국 정부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는 그가 중동평화의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네탄야후 같은 초강경파 인사가 집권하게 될 경우 중동 평화는 거의 불가능하다. 자신이 집권하면 이란을 공격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포할 정도니 말이다. 이락 전쟁으로 가뜩이나 불안한 중동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3차 세계전쟁으로 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성경은 이미 2000년 전에 이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 되더라....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요한계시록16:12, 14).  

  2006년의 시작은 정치가들의 장밋빛 연두교서와는 달리 불안하게 시작되는 것 같다. 인간에게 희망이 있는가? 아니 거창하게 인류를 거들먹거릴 필요도 없이, 나에겐 올해 희망이 있는가? 무슨 희망으로 올 이민생활을 하는가? 희망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는 '앞날에 대한 바램'이다. 희망은 미래에 관한 것이다. 바램이 있다면 그 삶은 행복하다. 그러므로 희망 자체가 현재의 행복의 조건이 된다. 인간이 희망 없이 산다는 것은 살지 않는 것과 같다고도 말할 수 있다. 지옥이란 무엇인가? 단테는 신곡에서 '이곳에 들어가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리시오'라고 지옥의 입구에 써 놓았다. 희망이 없는 곳이 바로 지옥이다.

  왜 인간의 희망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가 들수록 약해지는 것일까? 올바른 희망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희망하는 것들은 대게 무엇인가? 상황의 변화가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보다 조금 나아지는 조건을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상황에 도달하면 행복해지는가? 일류대학 입학의 희망이 성취되면 행복한가? 진급의 희망이 성취되면 행복한가? 좀더 큰집을 산다면? 그 희망이 성취되면 반드시 또 다른 희망이 생기게 된다. 소유에 의한 희망은 희망이 아니다. 오히려 버릴 때, 남에게 베풀 때, 나 자신을 비어갈 때 참다운 희망이 생긴다.

  성경은 소망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로마서8:24). 참다운 희망은 눈에 보이는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보는 나의 마음의 자세에 있다. "희망의 원리"라는 역서의 저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문제는 희망을 배우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희망이 있냐 없냐가 문제가 아니라 희망 갖는 법을 배웠느냐 못 배웠느냐가 문제라는 것이다.

  조창호씨는 6.25전쟁 때 국군 포로로 잡혀 북한에서 43년 간 지옥 같은 생활을 한 사람. 탈출에 성공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난 43년 간의 북한에서의 생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형제자매가 있는 남한이 내가 뼈를 묻어야 할 곳'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13년 간의 교화소(교도소)와 그 뒤에 이어진 13년 간의 탄광생활은 장티프스, 콜레라 등의 온갖 전염병과 심한 감시 속의 절망스런 상황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 희망만은 버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내가 소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돌보아 주셨다고 생각된다. 내가 13년 간 5군데의 교화소를 옮겨 다니면서 내 손으로 1백여 명의 시신을 묻어주면서 한가지 귀한 깨달음이 있었다. 바로 '소망을 잃으면 사람은 죽는구나'라는 사실이었다. 교화소의 혹독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소망의 끈을 놓은 사람은 결국 자신의 생명의 끈도 놓게 되었다. 그것을 내 눈으로 수없이 확인했다. 절망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우리의 삶이 43년간 조창호씨의 삶보다 힘들겠는가? 당신이 지금 꼭 쥐고 있는 소망의 끈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