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저녁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카네기 홀을 찾았다. 김남윤 지휘의 뉴져지 필하모닉 갈라 콘서트였다. 모든 독주자들은 훌륭한 연주 기량을 유감 없이 보여주었다. 특히 미쉘 김의 바이얼린 연주는 모든 청중을 압도했다. 그녀는 세계에 700여대 밖에 없다는 명기 안토니오스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연주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테크닉을 갖고 있었다. 뉴욕 필의 부악장을 지낸 경력을 넘어 그녀는 세계적 솔리스트로써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쏠로 보다 앙상블을 즐겨했다. 어제도 그녀는 비올라와 함께 협주하는 모짤트의 '신포니아 콘첼탄테'를 택했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이 모든 청중들에게 전달되었다.  

  그 날 프로 중 가장 인기가 있었던 곡목은 박해리나가 연주한 가야금 협주곡 '새 산조'. 마치 학이 춤 추듯 연주하는 박해리나의 가야금 협주는 모든 청중을 사로잡았다. 내 뒤에서 연주를 듣던 이태리 부부는 계속 '브라보'를 연발하며 박수를 친다. 미국에서 자란 우리 애들도 가야금 협주곡을 가장 감명 깊게 들었단다. 맨 마지막 곡목인 안익태 작곡의 '한국 환상곡'은 이민 동포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40년 전 서울 시민회관에서 안익태 선생의 지휘로 이 곡을 처음 들었던 나의 흥분이 새롭게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모든 청중이 함께 합창한 '애국가'는 감동의 물결이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내 앞에 앉았던 노인은 계속 안경 속으로 손을 넣으며 흐르는 눈물을 감추고 있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런 연주회를 마련한 뉴져지 필하모닉에게 감사와 박수를 보낸다. 뉴져지 필하모닉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기도한다.

  연주를 감상하면서 묘한 기분에 젖어 들었다. 김남윤의 뉴져지 필은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위해 애쓰고 있었다. 바이얼린 김 미쉘은 비올라 레벡카 영과 멋진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얼굴 색깔과 모습은 다르지만 음악을 서로 주고받으며 진한 감동을 전해 주었다. 오케스트라는 대표적인 서양 음악이다. 그런데 여기에 가야금이 협주하면서 멋진 조화를 이룬다. 바이얼린의 잔 비브라토와 가야금의 깊은 농현(弄絃)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작곡가 박범훈은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여기에는 갈등, 질투, 상호 비방, 무시, 교만이 보이지 않았다. 나도 있고, 너도 있고, 우리 모두 공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름답게 증명해 보였다.

  가만히 보면 이 세상에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서로 조화할 수 없다면 이 세상에서 하모니를 이루며 살 것은 하나도 없다. 서양 음악의 대표적인 악기인 피아노와 바이얼린도 사실 서로 조화 할 수 없는 악기다. 음악적으로 말하면 피아노는 평균률 악기이고 바이얼린은 순정률 악기. 그러나 기본적인 음률이 틀림에도 불구하고 피아노 반주의 바이얼린 쏘나타는 아름답기만 하다.

  모든 것이 다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사는 지혜는 나와 똑같은 것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것과 어떻게 하모니를 이루며 살아가는데 있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 40대와 20대의 사고 방식이 다르고, 백인과 흑인의 모습과 습관이 다르고, 동양사람과 서양사람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민 사회는 모두 다른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다른 것들이 서로 이해하며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 반대로 서로 다른 차이만을 부각시킬 때 지옥 같은 세상이 된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바라는 세상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이사야11:6-8) 짧은 구절에 '함께'라는 말이 다섯 번이나 나온다.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것들이 함께 하게 되는 세상이 천국이다. 마틴 루터 킹은 이 성경 구절을 바탕으로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부르짖었다. 그의 꿈이 무엇이었던가? 백인들이 흑인과의 차이만을 얘기하던 시대에 모든 인종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 아니었던가? 조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만이 가정을, 사회를,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어 간다.  

  당신이 지금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어떻게 그와 멋진 하모니를 이루며 살 것인가?

(최혁 목사/ 포도나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