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 웨스턴 침례교 신학대학생 3명이 말의 힘에 대하여 연구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친구 피터를 실험대상으로 택했습니다. 저쪽에서 피터가 오고 있습니다. 첫째 학생이 그에게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피터, 얼굴이 안됐구나. 무슨 일이라도 있니?" "아니, 아무 일도 없어. 난 건강해." 조금 있다가 두번째 학생이 피터에게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야, 피터, 너 무슨 병이 있는 모양이구나. 왜 몸이 갑자기 말랐지? 내가 도와줄 일이라도 있니?" "아니야, 난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한참 있다가 세번째 학생이 피터에게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쯧쯧쯧, 피터, 너 요즘 무슨 일이 있니? 얼굴이 말이 아니구나." "난 괜찮아." 아무렇지 않다던 피터는 수업중에 교수님께 말하고 학교를 조퇴했습니다.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교실을 나갔습니다.

한 사람을 절망적으로 만드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서너번 계속된 부정적 자극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인생은 긍정적인 자극보다는 부정적인 자극이 훨씬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삶의 현장가운데서 계속적인 부정적 자극들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욥은 그의 재산이 스바 사람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계속해서 하늘의 불벼락을 맞았습니다. 계속해서 갈대아 사람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계속해서 대풍을 만나 아들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말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은 계속된 부정적 자극 속에서 어떻게 이렇게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었습니까? 그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핵심가치를 빼앗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삶의 현장에서 당신을 지켜줄 수 있는 핵심가치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