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스미스(Susan Smith)의 5살, 3살난 두 아들이 갑자기 없어졌습니다. 경찰에 유괴신고를 했습니다. 곧 범인의 몽타쥬가 작성되고 각지에 배포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건은 오리무중이었습니다. 전혀 단서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수잔을 불러 집중적으로 재수사를 폈고 결국 수잔 스미스의 자작극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수잔은 고등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 수재였습니다. 얼굴이 깜찍하게 생긴 금발의 여성입니다. 결혼해서 두 아들을 낳았지만 그 가정은 곧 깨지고 말았습니다. 수잔은 두 아이를 키우며 한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그 회사에서 일하는 한 청년과 사랑에 빠집니다. 그 청년은 수잔을 사랑했지만 결혼하는 일은 꺼려했습니다. 그 이유는 수잔의 두 아이를 키우기가 싫다는 것입니다. 수잔은 고민했습니다. 어느 날 수잔은 두 아이를 차 뒤에 태우고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고 한적한 호수에 가서 그 차를 호수 속으로 밀어버렸습니다. 그녀는 지금 종신형을 받고 감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심리학자들이 흥미를 갖고 그녀를 만나 상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그가 어려서 이혼했습니다. 곧 의붓 아빠가 생겼습니다. 수잔은 친 아빠에게 못 받은 사랑을 의붓 아빠에게서 받아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의붓 아빠는 조금 성숙해진 수잔을 성폭력의 상대로 삼았습니다. 그래도 수잔은 의붓 아빠의 사랑을 놓칠세라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아빠의 성 노리개가 되어 주었습니다. 결혼을 했지만 미숙한 사랑의 욕구를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랑에 굶주린 수잔은 회사에서 남자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끔찍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수잔은 몸은 성인이었지만 정신은 아직 아이였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의 사람을 '성인아이 Adult Child'라고 부릅니다. 어려서 해결되었어야 할 정서적 상황이 해결되지 않은 채 성인이 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몸은 현재를 살지만 마음은 아직도 과거의 묶여서 사는 사람입니다.

사람뿐 아니라 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인아이처럼 과거에만 집착해서 성장하지 않는 제도, 기관이 많습니다. 현실감각이 없고 앞날에 대한 전망도 어둡습니다. 어떤 기관보다도 성인아이로 고착되기 쉬운 기관이 교회입니다. 과거의 전통에 매여 있는 것이 거룩이라고 착각한다면 교회는 전혀 새로워 질 수 없습니다. 미국의 한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했습니다. 그 교회의 목사는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그 교회를 자랑스럽게 설명했습니다. 그들이 부르는 찬송가를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은 시편 1편부터 150편만을 파이프 오르간에 맞춰 찬송했습니다. 다른 찬송은 세속적이기 때문에 노래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16세기 죤 칼빈의 찬송가 신학은 400년 동안 수없이 발전되어 왔는데 그 교회는 아직도 죤 칼빈의 찬송가 신학을 하나님말씀처럼 붙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교회 교인 수 보다 훨씬 많은 뒤편의 교회 무덤들을 바라보며 한숨 쉰 적이 있습니다. 몇 년 전 피터 와그너 박사가 한국 교회에 대하여 말하는 중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예배 때 전통찬송가만 부르는 나라'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습니다. 양적으로 성장은 했지만 새로움에 대한 추구, 변혁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종말은 어떤 것일까요?

성인아이의 예배가 되면 안됩니다. 몸이 자라면 정신도 함께 성장해야 하는 것처럼 시대가 흐르고 변했으면 교회도, 예배도 그에 맞추어 새롭게 변해야 합니다. 본질적인 것은 절대 변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비본질적인 것은 자꾸 새롭게 바뀌어야 합니다. 새롭게 변하지 않으면 망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래된 포도주가 아니라 새 포도주였습니다. 새 사람이었습니다. 새 마음, 새 일, 새 하늘과 새 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