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혁 목사
9일 퀸즈장로교회(담임 장영춘 목사)에서 2005 예배학교 첫째 주 최혁 목사의 두 번째 강의가 있었다. 강의 주제는 첫 번째 현대예배에 이어 현대예배와 찬양에 대해 구체적으로 강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중문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대예배에 찬양은 그 뿌리가 대중음악이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전통예배의 뿌리는 클래식이다. 그러나 현대 예배는 대중음악, 대중문화에 더욱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특별히 한국사람에게 클래식은 고상하고 대중음악은 저질이다라는 분위기가 있다. 내 전공이 클래식이었기 때문에 대중음악은 음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왜 저질인 음악을 저렇게 할까 생각했는데, 마찬가지로 오페라. 슈베르트 음악을 가만히 분석해봤을 때 아주 저질 얘기이다. 돌아와요 부산항하고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이다.

특별히 현대예배에 관심 있는 사람은 대중음악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대중문화에 가장 관심이 있는 곳에 우리도 관심 가져야 한다. 예수님 말씀하실 때 매우 대중적이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이 세상 속에서 가장 고상한 지식인데 많은 사람에게 이 고상한 지식을 전하기 위해서 가장 대중적으로 가야 한다. 예배 인도자, 목회자, 현대 예배, 한 영혼 한 영혼에게 관심이 있다면 대중적이어야 한다. 재즈음악을 알아야 한다. 음악대학에서 배우는 기초도 중요하지만 대중문화를 이해하는 것에서 재즈음악은 교회 음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화음에 맞춰서 자기들이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재즈이다. 재즈에 미치는 것은 그 즉흥성으로 가는 것이다.서양음악은 지휘할 때 0.1초도 늦으면 안 되는 것. 기가 막히게 정확해야 한다. 한국 음악은 전혀 음악적 요소가 틀리다. 이런 동양적인 음악에서 즉흥이 나올 수 있다. 판소리에는 악보를 만들 수 없다. 즉흥성이 너무 많게 때문에. 악보 없이 즉흥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앞에 있는 사람이 장단을 잘 맞춰주면 4시간이고 6시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즉흥성이라는 것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서양 음악에는 정확해야 하고 거기에 미학이 있지만, 그것은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동양음악은 자유로운 음악 속에 성령이 역사가 일어나기 쉽다.하나님의 임재는 자유로울 때 일어난다. 경직되어 있을때는 임재하기 쉽지 않다. 찬송가를 보는 것보다 거기에 묶이는 것보다 찬송가를 놓는 것이 훨씬 자유롭다. 그래서 요즘 프로젝트 빔을 쏘고 그러는 것이다. 하나님께 가깝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꾸 자유로워야 한다.

그리고 창법. 노래하는 방법. 벨칸도 창법, 공명법, 목소리를 최대한 공명시켜서. 최고의 미성으로 치는 벨칸도 창법이 있다. 예전에는 마이크로 시스템이 발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벨칸도 창법을 하기 위해서는 공명시키기 위해 목소리를 끌어 올려야 한다. 목소리를 끌어 올려 드리는 벨칸도 창법이 최고로 했다.

현대는 공명이 필요없다. 마이크 볼륨만 키우면 커지니 말이다. 생소리는 그대로 하기 때문에 가사 전달이 그대로 된다. 왜 가사전달이 분명하지 않은가. ‘으’ 같은 바람은 이태리 창법에 없다. 그런데 우리 노래는 ‘으’ 창법이 많다. ‘아으으으으~(판소리)’가사전달이 분명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쉽다. 조금만 배우면.

요즘에는 브로드웨이에서 노래하는 사람이 음악 공부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노래를 조금 배운 것. 클래식 창법으로는 찬양이 안된다. 회중찬양은 솔로가 아니다. 찬양경배 인도자들은 가장 대중적인 목소리 수준에서 찬양을 인도하면 성령이 잘 임할 수 있다.

성악 목소리는 가스펠 할 창법은 아니다. 어떤 소리가 창법에 맞는 것인가. 그냥 말하는 가벼운 소리가 가스펠에 맞다. 음색이라는 것이 한 곳에 고정되어 있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현대가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가. 음색을 통해서. 다 바뀌는 것이다. 비본질적으로 자꾸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태지를 알아야 한국 문화 코드가 보인다고 했다. 그런데 보통 나이 많은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 세상을 비유하는. 야비하고 조소하는 듯한 음색으로 바뀌는 듯한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제가 여러 가지 다니면서 공통적으로 느꼈던 것이 있는데 찬양은 대중음악이 뿌리이다. 지금 교회마다 전쟁이 났다. 성가대와 찬양 경배팀이 많이 싸우는 것을 많이 보았다. 찬양팀과 성가대와의 싸움이 많다는 것이다. 그럼 성가대 없애야 하나? 그것이 아니라 성가대가 많이 발전되어야 한다. 노래스타일도 많이 발전되어야. 새로 나오는 스타일로 자꾸 만들어 가야 한다.

부루클린에 태바나클 처치 찬양집회에 가면 전율이 느껴진다. 들으면서 찌릿하고, 전율이 느껴진다. 어떤 여자가 나와서 백인 여자가 지휘하는데 사람을 전율케 하고 긴장시키게도 한다. 지금은 찬양인도를 딸이 한다. 그 딸이니까 음악공부를 했을 수 있는데 어렷을 때부터 찬양 가운데 자랐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었다.

모든 음악은 하나님의 것

대중음악의 방향이다. 지금 찬양 경배에 뿌리를 박고 있는 음악은 찬양 경배라는 것을 얘기했다. 한국의 국악, 클래식, 대중음악, 다 예배를 그렇게 드릴 것이다. 예배 디자인이 필요하다. 가장 피크 가운데 우리나라 사물놀이도 넣어도 큰 어필을 할 것. 예배는 축제이다. 다 사용할 수 있다. 아시안, 흑인, 백인의 음악. 다 사용할 수 있다. 하나님의 것이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술 먹고, 나쁜 짓 다 했었는데, 성령의 임재로 변화되어 예수를 증거하고 이렇게 변화. 어떤 문화던지 예배 때 사용 할 수 있는 것이다. 대중 찬송을 활성화한다. 찬송은 두 가지가 대중찬송과 전문 찬송이 있다. 성가대가 하는 것은 전문 찬송이고 찬양단이 하는 것은 대중찬송이다. 지휘자 할 때 정말 잘 했었다. 예전에 지휘자로 섰었는데 정말 열심히 했었다. 음악학적으로는 잘 모르겠는데 생각해보면 우리 성가대원 고생시켰다. 청중도 고생시켰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성가대 노래 부른 다음에 아무도 은혜 받은 사람이 없었다. 전문 찬송과 대중 찬송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연주회 하듯 그렇게 했었다는 것이다.

대중 찬송과 전문 찬송은 상반적인 차이가 있다. 출애굽기15장. 첫번째 찬송. 이스라엘 60만 명이 노래 부른 것은 대중찬송이다. 이것이 역대기정도 가면 전문 찬송으로 바뀌어 진다. 속사도 시대 때는 대중찬송으로 바뀌어 진다. 중세 시대 때 전문찬송으로 가고.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마틴 루터, 칼빈 같은 사람이 나오면서 대중찬송으로 간다. 종교개혁 후반에 가서는 전문 찬송으로 바뀐다. 바하라던가 헨델, 이런 사람들은 대중 찬송에 기여한 것은 하나도 없다. 전문 찬송에 기여한 것. 현대에 와서 예배드릴 때는 성가대가 하고. 회중들은 찬송 2-3개정도 하고. 전문 찬송이 발달된 시대에 살고 있다. 또 대중찬송도 많이 불려지고 있다. 대 전 대 전 대 전 대 전. 이렇게 변화된 것이다.

대중에게는 대중적으로 나가야 한다.

찬양하는 사람은 어려운 찬송을 부르면 안된다. 절대로 어려운 찬송을 부르면 안된다. 대중찬송 인도하는 사람은 쉽게 불어야 한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전문 찬송이 판을 치고 있을 때 항상 대중찬송이 나오면 항상 반발을 받았다. 천하다, 세상적이다라고 말이다. 항상 대중 찬송은 새로운 시대가 일어났을 때 교회가 개혁되고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볼 수 있다.

현대에는 대중 찬송과 전문 찬송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때이다. 이만큼 cd가 많이 나오는 때가 없었다. 하나님 믿지 않는 사람들도 CCM노래를 많이 듣는다. 장사가 된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찬양이 발달되어 있다. 지금은 대중 찬송과 전문 찬송이 다 나온 시대이다. 아시아. 백인, 흑인, 다 하나님 예배 가운데 쓰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기타를 보면 현대예배의 뿌리는 대중음악이다. 찬송가는 시로 되어 있다. 영어 찬송을 다 보면 시로 되어 있다. 아주 복잡하게 꿰어 있어서 금방 안 들어 온다. 요즘에 부르고 있는 코러스는. 예수 사랑해요, 정도이다.

나를 용서, 사랑. 다 나의 체험의 중요시되어있다. 내 생활의 체험. 현대 가사의 내용은 하나님을 올바르게 찬양. 하나님은 높으시고 광대하십니다. 하나님을 순수하게 높이는 찬송은 몇 곡이 안된다. 근데 요즘은 다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을 하는 것. 요한계시록에 많은 찬송이 나오는데, 주어가 I 인 것은 하나도 없다. 나는 하나도 없고 하나님만 찬양하시는 것이다. 다 하나님이죠. 한번도 i가 안 나온다. 이것이 순수 찬양.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내가 뭐 죄인이고 이런 것이 아니다. 이것이 순수찬양이 아닌가 생각 된다. 현대 있는 코러스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많다.

찬양은 성령 운동에 영향을 준다. 찬양할 때 자유함이 있을 때 성령이 자유롭게 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령 하나님을 체험해야 한다. 하나님을 체험한다는 것. 그래서 현대예배가 멋있다고 하는 것이다. 성령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 성령 하나님을 체험해야 하나님이 임재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도록 각자 그 느낌을 이야기 할 때 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체험할수록 예배가 재밌어지고, 안그러면 예배가 형식화 되어진다.

중심이 설교였기 때문에 찬양은 준비 찬양. 설교 준비 때문에. 설교가 역할이 커졌기 때문에 설교=예배 이런 의식이 많다. 이것은 옳지 않다. 설교는 예배의 한 파트이다. 프레이즈라는 것은 하나님을 칭찬하는 것.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을 찬양. 사람도 똑같다. 이 자매 옷과 너무 잘 어울려. 칭찬하면 이 자매는 좋아한다.

친구가 없는 것은 칭찬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프레이즈라는 것이 그렇다. 하나님을 찬양하면 칭찬하면 하나님이 성령이 임하는 것이다. 진실하게 하나님을 간절히 찬양하면 성령의 임재하심을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가야한다. 하나님이 그렇게 찬양을 좋아하신다. 성령님께서 임재하실 때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고 안 일어날 수도 있고, 눈에 보일 수도 안보일수도 있다.

나한테 그런 역사가 일어났을 때 성령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매우 중요하다. 찬양 경배 가운데서 성령과 일치되는 것이 없으면 하나의 형식으로 밖에 될 수 없다. 이 하나님을 성령 하나님이기 때문에 성령하나님을 공부하고 체험하길 바란다.

찬양 인도자의 중요성

현대찬양에는 워십 인도가 중요하다. 이제까지 전통적인 음악에서 정말 워십 리더가 중요한 것이 음악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잘 리더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도할 줄 알아야 하고. 흑암권세 물리칠 수 있는 기도도하고. 기도 인도도 할 수 있어야 하고, 성경 말씀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는 경배 인도자가 점점 필요한 상황이다. 목회자적인 자질이 있거나. 목회자가 직접하는 것이 좋다. 안그러면 목회자와 코워크가 잘되는 인도자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코워킹. 이런 것들을 잘 할 수 있으면 너무 멋있다. 찬양 경배는 담임 목사가 앞에 앉아서 함께 찬양해야 한다. 아무리 유능한 찬양 인도자가 있어도 담임 목사가 협조 안하면 형식적인 예배가 된다. 찬양 경배 인도자가 참 중요하다. 워십리더라는 것이 무엇인가. 음악적인 목자. 영적인 목자. 둘 다 탁월한 수준까지 갖추져야 한다. 찬양 경배 인도자를 많이 나와야 한다. 앞으로 찬양 인도자가 많이 필요한 시대.

신령한 찬양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다섯번째 현대예배 찬양에는 신령한 노래가 부활하고 있다. 에베소서5: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 찬미-찬양, 시와 찬양을 영적으로 노래하는 것이다.

이 중세시대까지 찬양의 경향은 유럽에 영향을 받아서 즉흥적인 것이 없다. 자유로움이 없다. 지휘자에 맞게 딱딱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의 흔적들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고전14 내가 만약 방언으로..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영으로 찬미한다는 것. 찬송을 영적으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찬미한다는 것은 방언찬송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구약에도 이런 것이 보인다.
시66:17 높이 찬송이 무엇인가. 하이 프레이즈. 하나님의 존영은 어떤 찬송인가. spiritual을 이야기한다. 자유로운 찬송을 이야기 한다. 자유로움이 구약시대에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 즉흥성이 이 때 있었다. 가사. 이제까지 찬송가에 묶여 있다가. 빔을 통해 가사가 좀 자유롭게 되어진 것이다.

수 천년 가운데 묶여져 있는 찬양이 다시 회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유로움. 현대에 찬양, 경배가운데 부활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고 쉽다. 음악은 반복이다 자꾸 반복하면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근데 계속 반복하면 지겨워진다. 두 세 번까지는 괜찮은데 다섯 번째 하면 화가 난다. 그런데 영적으로 깊어지면 반복을 몇 백 번 할 수 있다.

예배는 연애와 비슷한 것. 이것 저것 정보를 얻을 지 모른다 그러나 사랑이 깊어지면 말이 필요 없다. 자꾸 깊이 들어갈 수 있으면 반복이 된다. 골방 찬양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골방에 들어가서 몇 시간 동안 계속 해보시길 권한다.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까지 가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못 받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라고 인도할 수 있나. 크리스천은 먼저 예배에 성공해야 한다. 미국의 축복은 필그림이 와서 교회를 세워 하나님을 섬겨 축복이 임한 것처럼 이 축복이 여러분 가운데 있길 바란다.

2005 예배학교는 6주에 걸쳐 일주일에 두 강좌씩 매번 다른 강사가 서게 된다. 두 번째 주인 15-16일에는 LA동양선교교회 정종원 목사가 찬양팀 세우기, 예배기획 및 적용에 대해 강의할 예정이며 그 이후 강좌와 강사 및 주제는 다음과 같다.

셋째주 장영춘 목사-예배학(I.II)
넷째주 양형모 집사-교회음향(I.II)
다섯째주 Bob Fitts-예배찬양의 중요성 및 찬양의 방법
여섯째주 천관웅 강도사-다양한 찬양인도법의 실제 및 찬양 Worksh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