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교회성장학자인 피터 와그너 박사는 한국 교회의 열렬한 후원자요 광고자이셨습니다. 얼마 전 와그너 박사님이 한국교회의 찬송에 대하여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수백 년 된 찬송가(Hymnody)만을 예배 때 고집하는 교회는 이 세상에 한국 교회밖에 없다." 이 말은 한국 교회를 칭찬하기 위해서 하신 말이 아닙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한국 교계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는 찬송가책을 성경 뒤에 달고 다니는 사람을 다른 나라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나라의 많은 성도님들은 성경의 권위와 찬송가책의 권위를 거의 동등하게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찬송가를 성경 뒤에 달고 다닐 때 여러 가지 편리한 점이 있지요. 언제 어디서나 책을 펴고 찬송할 수 있습니다(미국의 교회들은 찬송가책을 교회가 비치하고 있다). 찬송가가 통일되었다는 것은 연합 사역을 하기에도 편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단점도 있습니다. 우리 세대에만 벌써 찬송가가 3-4번 바뀌었습니다. 그때마다 거의 암기된 찬송가의 가사와 장수가 헷갈리게 됩니다. 가장 큰 단점은 찬송가책에 실려 있지 않은 다른 찬송들은 찬송가책의 찬송에 비해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찬송가책의 찬송들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 가사와 음악은 이미 흘러간 노래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변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찬송은 변해야합니다. 말씀은 수천 년 간 일점 일획도 변하지 않았지만 찬송은 수천 년 간 수없이 변해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클래식 음악은 좋고 고상한 음악이고 대중음악은 천한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보수적인 크리스천에게는 이런 생각이 강합니다. 그러나 모든 음악은 결국 유행가입니다. 영원한 음악이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이 영원합니까? 모짤트의 음악이 영원합니까? 클래식 음악이 영원하다면 왜 클래식 FM방송이 문을 닫습니까? 왜 서구의 오랜 전통을 가진 오케스트라단이 경영난에 허덕이다 문을 닫습니까? 모든 음악은 한 시대를 풍미하는 유행가입니다. 모든 찬송도 유행가입니다.

다윗 시대의 영감 있는 찬송은 그 시대에 유명한 찬송이었을 뿐입니다. 초대교회의 뜨거운 찬송도 한 시대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었던 유행가일 뿐입니다. 우리 시대에는 우리 정서에 맞는 가사와 음악으로 하나님을 높여 드려야 합니다. 송명희와 같은 찬송 시인과 하용인, 최덕신, 고형원 같은 찬송 작곡가들이 많이 나오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