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과 경배의 차이

음반관계자의 얘기를 빌리면 2000년과 2001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발매되었던 찬양 음반의 약60%~70%가 워쉽음악 즉 찬양경배예배에 불려지는 예배음악이라고 한다.

그렇게 된 이유는 최근 각 교회에서 기존의 예배스타일에서 음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조금 더 엄밀히 이야기하면 회중찬양이 많이 차지하는 찬양경배예배가 청년예배 또는 찬양예배라는 이름으로 상당히 빠른 속도록 퍼졌다는 것의 증명이기도 한다.

이러한 흐름은 공연찬송만 대접받던 교회에 회중찬양이 그 위치를 더 해 간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이젠 젊은이들을 초월해 모든 계층으로 조금씩 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든다

찬양경배 예배 스타일이 왜 빠르게 최근 교회에 빠르게 파고 들어올 수 있었겠는가?

찬양경배는 예배에 단지 참석자로만 머문 수동적인 자세에서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하였다. 회중들이 예배모임에 참석해서 직접적으로 주님께 고백하고, 주님을 경배하고, 또한 주님이 주시는 치유를 경험케 되는 놀라운 일들이 모임 가운데 일어났다.

현대적인 찬양경배는 몇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가사가 다르다

나의 체험보다 하나님의 주권을 찬양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나의 갈길 다가도록,나의영원하신기업 내영혼이 은총입어--> 거룩거룩거룩하신주, 오 하나님 영광받으소서

운문보다는 산문

2. 뿌리가 대중음악이다.

리듬, 멜로디, 화성

유행가라는 것은 그 당시 사람의 감정에 가정 적합한 음악

어떤 음악이든 시간의 차이는 있어도 결국 유행음악에 불과하다 (음악은 취향)

3. 악기가 현대적이다.

오르간, 피아노

4. 짧고 쉽다.

5. 성령역사의 도구

찬양은 아름다운 음악이 아니라 사탄 마귀와 싸우는 병기 역할을 한다.

그리고 동시대성이다. 동시대성은 그저 우리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간다는 뜻이 아니다 동시대성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시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파악한 것을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해 주고 있다는 뜻이다.

찬양 경배의 역사

예배 형식의 발전

1. 성서시대 (태초 - ad 1세기)

최초의 찬양 - 출 14장 홍해의 대합창 (열정적, 쉬운 가사 멜로디, 개인적인 고백) - 붉은악마의 모습과 흡사하다.

2. 사도시대 (ad33-410, 아구스 티뉴스)

바울과 실라

3. 중세시대 (410-1517)

르네상스 (인본주의)

음악이 불리되기 시작함.

4. 종교개혁시대 (1517)

루터 - 많은 코랄을 만들어냄. 라틴어 대신에 독일어사용 권장

5. 영, 미 각성시대 (18, 19세기)

지금의 찬송가

6. 현대 (20세기)

최초의 예배인도자를 이야기하자면 성경의 다윗을 들 수 있고 찬양경배의 힘 영향력을 보면 사도행전 16절에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혔을 때 하나님을 찬미하였을 때 옥문이 열리고 갇힌 것이 풀리는 역사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간은 지금 우리가 드리고 있는 현대적인 찬양경배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현대적인 찬양 경배

현대적인 찬양경배 예배의 시작은 역시 미국에서 찾을 수 있다.

1960년대 후반. 세계적인 휴양지인 캘리포니아 해안에 미국과 유럽의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히피운동이 그것인데, 이들은 쾌락주의로 내일에 대한 소망없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히피라고 불리우는 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는데, 이들 히피들중 예전에 어렴풋하게 교회에 다닌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있지 않았겠는가?

그 기억에 교회를 찾아갔다. 당시 그 지역은 미국의 중상류층이 주류를 이루는 곳이었는데, 면도도 두더라도 세수도 하지 않은 꾀째째한 차림새에 슬리퍼 같은 것을 질질 끌고 오는 것이 그들의 사고방식으로 배척하고 용납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사용된 목사님이 바로 갈보리채플의 척스미스 목사이다. 이 목사님은 차를 타고 다니다가 길거리에 히피 청년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면 내려서 이들과 얘기하고 원하는 자들은 기도주고 또, 자기 집에 놀러오라고 말을 해 주었는데, 실제 몇 명이 집에 놀러와서 성경공부하고 또 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오고 그래서 사람들이 늘어가기 시작했는데, 갈보리채플이라는 교회가 생기기 시작했다. 60~70년대 미국은 심각한 영적침체기를 걷고 있을때였는데, 갈보리채플은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기록에 의하면 한 주일에 천명이 새로 등록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갈보리채플을 중심으로 펼쳐진 예수운동(Jesus Movement)은 급속히 퍼져나갔다. 갈보리교회에서는 태평양 해안에서 히피들을 위해 대규모 세례식을 거행했다.

그 당시 통계를 보면 평균 매월 900명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수천을 헤아리는 군중들이 해변가로 찾아와 장사진을 이루고 자기의 세례 차례를 기다렸는데 이는 마치 인간 추수장을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새로운 물결(예수운동)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일반 언론매체인 타임, 룩, 라이프, 뉴스위크를 비롯한 수많은 언론매체를 통해 다뤄 질만큼 크게 확산되었다. 갈보리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음악의 소리나 겉모습보다는 그 마음의 조건과 더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은 교회였다.

그야말로 부흥인 것이었다.

이 히피청년들 가운데서 자기들의 정서에 맞는 곡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다며 어떻겠는냐고 제안을 했는데, 척 스미스 목사님이 흔쾌이 허락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CCM의 원조가 되었다. 그 때 만들어졌던 곡들이 「작은불꽃하나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목마른 사슴」 「내안에 사는이」 「주의 이름 높이며」같은 찬양이다.

갈보리 교회에서는 변화된 젊은이들을 토요찬양집회를 통해 영적으로, 음악적으로 깊이 훈련 시켰고, 1971년